[금주의 키워드] 오즈의 ‘마법사’-드러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입력 2016-11-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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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1900년에 나온 프랭크 바움의 원작 소설보다 1939년 제작된 뮤지컬 영화가 훨씬 더 유명한, 많은 미국 영화비평가들이 ‘100대 명화’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에서 최대 반전은 무소불위의 ‘마법사’가 사실은 힘없고 볼품없는 노인으로 드러났을 때였다. ‘최순실 게이트’를 따라가면서 기시감(旣視感)이 생겨난 건 바로 그 장면 때문이었다.

먼저 ‘오즈의 마법사’. 강아지 토토와 함께 토네이도-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집을 떠나 오즈라는 마법의 도시에 날아오게 된 귀엽고 깜찍한 소녀 도로시는 오직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다. 도로시는 이곳을 다스리는 마법사가 소원을 들어주리라 기대하고 마법사가 사는 에머럴드시티로 떠나는데…, 도중에 만난 ‘두뇌 없는 허수아비’ ‘심장 없는 양철나무꾼’ ‘용기 없는 사자’는 도로시의 소원을 듣고는 자신들 역시 마법사를 만나면 두뇌와 심장, 용기를 머리와 몸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된다.

도로시 일행이 만나려는 오즈의 ‘마법사’는 백성들을 만나지 않고 오즈를 다스렸으며, 간혹 만나더라도 둔갑술을 부리듯 모양과 목소리를 바꾼 채 나타난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소통’할 때도 있다. 순진하고 착한 오즈 백성들은 오직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위대하고 힘 있는 마법사인 줄로만 알고 있다.

마녀를 만나 싸워 물리치는 등 천신만고 끝에 자신을 만나러 온 도로시 일행에게도 그는 처음엔 ‘알현’을 허락하지 않다가 하루 한 명씩 차례로 만나는 주지만 도로시에게는 ‘머리뿐인 괴물’로, 허수아비에게는 ‘아름다운 요정’으로, 양철나무꾼에게는 ‘무시무시한 야수’로, 사자에게는 ‘커다란 불덩어리’로 나타나는 마법을 부려 이들을 두려움과 낙망 속으로 빠트린다.

그러나 ‘우연히’ 강아지 토토가 커튼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그 뒤에 숨어 있다 정체가 드러난 마법사는 대머리에 주름투성이 얼굴을 한 조그마한 노인. 노인은 도로시 일행에게 자기는 복화술사로 도로시의 집이 있는 곳의 서커스단에서 온갖 짐승소리와 바람소리 벼락소리 따위를 내는 역할을 했으며, 열기구를 탔다가 도로시처럼 바람에 밀려 오즈로 오게 됐고 오즈 사람들이 자신을 하늘에서 보낸 마법사로 믿는 바람에 수십 년째 오즈를 다스리게 됐으며,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서커스단에서 익힌 기술로 가면을 만들고 분장술을 썼고, 상황에 맞춰 필요한 목소리를 복화술로 만들어냈다고 고백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니까 그런 말을 쓸 수는 없었겠지만) 도로시가 “이거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네”라고 할 만한 상황이 벌어진 것처럼 ‘최순실 게이트’ 역시 한 겹 한 겹 껍질이 벗겨질 때마다 ‘드러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더니 급기야는 거꾸로 처박고 있구나!’라는 기막힌 한숨을 토해내게 하고 있다.

능력도 경력도 없는 여자가 아버지 한 번 잘 만나(?) 언감생심(言敢生心), 대통령 측근이 되어 견물생심(見物生心), 권력과 재물을 탐내고 쌓더니 마침내는 대한국민들이 피땀으로 이룩한 대한민국을 말아먹고 그들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게끔 하고 있는 것이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이다. 사태가 돌아가는 꼴로 보면 대통령도 ‘아버지 한 번 잘 만나’ 대통령이 된 것이라고 말해도 지금은 토를 달 사람이 별로 없지 싶다.

이들은 무슨 분장술과 무슨 복화술을 썼기에 숱한 사람들이 길게는 18년, 짧게는 3년 반을 속아 넘어갔을까? 무슨 재주를 부렸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마법사로 믿게 되었을까? 오즈의 ‘마법사’는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살게나 했지, 그래서 오히려 감사를 보내는 백성도 있었지만 이 땅의 마법사들은 자기네들끼리 농탕을 치면서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일찍이 없이 크나큰 걱정거리로 만들었다.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나선 도로시 일행.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한 장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나선 도로시 일행.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한 장면.

오즈의 ‘마법사’와 ‘최순실 게이트’의 차이점은 또 있다. 도로시와 허수아비, 나무꾼, 사자는 마법사의 정체를 알고 난 후 이 노인을 사기꾼이라고 나무라며 헛된 소문을 따라 갖은 고생을 하며 이곳까지 찾아온 자신들의 노력이 헛되이 된 것을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하지만 노인이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고 미안해하자 용서한다. 도로시처럼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보고 싶다며 울먹이는 노인을 도로시는 방법을 찾아보자며 오히려 달래기도 한다. 약간의 우여곡절이 더 있지만 어쨌든 영화는 모두의 소원이 성사되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절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구도이다. 솔직함도 없고, 진심을 담은 부끄러움과 사과도 없다. 계속되면 주인공들과 출연진만 아니라 온 국민이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구도일 수밖에 없다.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검색했더니 몰랐던 해석이 있었다. 1964년 이 소설에서 정치·경제적 암시를 찾아냈다는 헨리 리틀필드라는 교사의 주장이다. 그는 이 소설이 19세기 후반 미국의 정치투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마법사’는 당시 미국 대통령, 마녀들은 은행과 노조 등 권력집단을, 허수아비는 농민을, 양철나무꾼은 공장 노동자, 사자는 유명 야당 정치인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다면 ‘최순실 게이트’를 뮤지컬, 영화로 못 만들 것도 없다. ‘문화계의 황태자’ 차 모에게 맡기면 그 넓은 마당발을 이용해 좋은 기획을 해낼 것이다. 그에게 기회를 한번 주자. 단 제목은 ‘오방낭의 마법사’쯤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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