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에 대한 가치 기준을 논할 때, 흔히 우리는 ‘성공의 오리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점검해본다. 잘 만든 것이 오리진이 될 것인지, 잘 파는 것이 오리진이 될 것인지, 잘 만들었다고 자부하는데 많이 팔지 못했다면 그 책임이 큰 것인지 등이다. 특히 많이 팔기 힘든 제품을 죽을힘을 다해 판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면, 분배율을 과점할 마땅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등의 무엇이 성공의 오리진이 될지는 사실 양자 간에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분배하는 입장에는 사전(before)과 사후(after) 상황에 따른 자신의 주관성과 뜻 모를 자기 합리화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군가와 작은 의미로 동업(同業), 거창한 의미로 상생하려다 보면, 문제는 인정(출자)과 분배에서 벌어진다. 성공한 이후 ‘욕심이 과하다’거나 ‘위험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음에도 이제 와 제 밥그릇을 챙기는 식’으로 비친다는 것은 보는 이나 비춰지는 사람 모두에게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분배의 문제는 처음 계약 과정에서 발단하지만, 사실 그 과정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해도 결과에 승복하는 상황은 많지 않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투자사(혹은 유통사)와의 계약서라는 것이 단지 문서상 대등한 관계일 뿐 힘의 위계(Hierarchy) 자체가 수평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형상으로 계약의 모양새가 순탄하게 보일 뿐, 서로 언제든 자신의 몫에 대한 분배의 시한폭탄을 장착하고 상생을 운운하는 것이 못 미더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언제 어떤 위험이나 달콤한 열매도 서로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의 믿음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어떤 계약서를 작성하든 ‘법 위에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글로 작성한 계약서보다는 동업과 상생의 미래 가치가 사안이 발생할 때 판단할 기준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이제 필자의 회사에서는 성공이 무엇에 기인했는지를 애써 따지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의 능력치를 100% 쏟아부었는지, 성공의 열매에 대해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재분배의 몫을 남겨두었는지에 대해 서로 의견을 공유하는 것이 첫 성공의 역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