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이 ‘재승박덕의 사회’를 어찌하나

입력 2016-09-1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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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그들은 머리가 좋다. 시험성적이 좋다. 어떻게 하는 게 출세하는 길이며 부와 권력에 명예까지 거머쥐는 방법인지 잘 알고 있다. 남을 딛거나 밟고 올라서는 수단도 본능과 체질로 잘 아는 사람들이다. 시험으로만 뽑는다면 어떤 공직에든 다 합격할 만한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요즘 물의를 빚고 비리와 추문의 의혹에 휩싸인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인상이다.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세상을 보편타당하고 공정하게 살면서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이 아닐까. 남과 내가 다른 점, 남이 나보다 나은 점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능력과 자세, 이런 게 아닐까. 바꿔 말하면 그들은 덕과 상식이 없다. 세상일에 대한 두려움 없는 자신감, 거칠 것 없는 언동, 사회적으로 자기보다 조금만 못한 사람이면 무시하는 태도는 덕과 거리가 멀다. 그런 이들의 특징이 재승박덕(才勝薄德)이다. 재주가 너무 승해 덕이 없는 사람들은 한때 빛을 보지만 결국은 남을 해치고 스스로를 망친다. 똑똑함과 지식이나 권력에 기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을 갖추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두 재상, 오리 이원익과 서애 유성룡은 사뭇 대조되는 인물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속이지 못하겠고,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서애는 분명하고 정확해서 빈틈이 없고, 오리는 너그럽고 부드러워 인심을 얻었다는 뜻이다. 서애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불가기(不可欺)의 무서움보다 불인기(不忍欺)의 부드러움이 더 나은 게 아닐까.

오리가 타계한 뒤 효종은 그의 신위를 종묘에 배향(配享)토록 하면서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할 것처럼 가냘프나 관직을 맡으면 늠름하여 범하기 어렵고, 말은 입에서 나오지 못할 것처럼 수줍으나 일을 만나면 패연(沛然)히 여유가 있었다”고 평했다. 몸이 옷을 이기지 못한다거나 수줍은 듯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은 덕이 있는 군자를 이야기할 때 흔히 나오는 표현이다.

노자 도덕경 15장에도 “도를 체득한 사람은 (중략) 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 사방의 이웃 대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럼 어려워하며, 녹으려는 얼음처럼 맺힘이 없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며, 계곡처럼 트여 있고, 흙탕물처럼 탁하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공직자들이나 사회 지도층은 어찌 그리도 매사에 자신이 있을까. 옷을 이기지 못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옷을 입거나 남의 옷을 뺏으려고 안달복달하는 모습이 추하다. 중국 송나라 때의 명신 사마광은 “총명하여 사물에 밝고 굳센 것을 재(才)라 하고, 정직하게 한쪽으로 편벽되지 않은 것을 덕이라 하며 (중략) 덕은 재에 앞선다”고 말했다. 재와 덕을 함께 갖추면 성인, 재와 덕을 함께 잃으면 우인(愚人), 덕이 재를 앞지르면 군자, 재가 덕을 앞지르면 소인이라고 했다. 소인은 재능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른다. 그래서 사람을 쓰려면 소인보다는 차라리 우인을 쓰라고 하는데, 우리는 소인이 더 잘되고 소인을 더 잘 기용하는 것 같다.

사회가 맑아지려면 덕 있는 공직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만성은커녕 소기조성(小器早成), 아니 소기졸성(小器拙成)의 조무래기들이 쉬파리처럼 앵앵거리며 더러운 것을 묻어 옮기고 설치는 세상이어서는 곤란하다. 제대로 된 인물을 고르고 기용해 공직사회에 덕의 낙수(落水)효과가 생기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이든 민간 부문이든 새로 ‘임관’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도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사회의 낮고 그늘진 곳에 찾아가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봉사토록 하면 어떨까. 없는 덕은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억지로라도 만들어 주어 익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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