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쥐’ 기업들

입력 2016-07-0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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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금융시장부장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보면 한 가지 원초적인 궁금증이 생긴다. 이 기업은 민간기업일까 공기업일까. 지분율을 봐도 헷갈린다. 대우조선해양은 원래 민간기업인 대우그룹 계열사였다. 1973년 충무공의 정신을 되살린다며 옥포에 조선소를 만든 게 시작이었다. 1993년에는 한국 최초 전투잠수함 ‘이천함’을 건조해 방산사업에서 성과를 올렸다. 그러다가 1997년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로 고꾸라지자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 이후의 지분 변화 과정은 너무 복잡하다.

하여간 수차례 정부 자금이 투입됐고, 그 결과 현재의 대주주는 KDB산업은행이다. 산은 지분율은 50%에 가깝고 금융위원회도 8.5%나 가지고 있다. 산은이 정부 조직은 아니니 대우조선해양은 법적으로 보면 민간기업에 가깝다. 하지만, 직접적인 정부 지분이 8.5%나 되고 산은이 정부 산하기관인 만큼 사실상 공기업으로도 볼 수 있다.

역대 최고경영자(CEO)들을 보면 더 헷갈린다. 분식회계 등 각종 비리 의혹을 받는 남상태 전 사장은 두산기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1979년부터 줄곧 대우조선에서 근무한 정통 ‘민간 기업인’이다. 그럼에도, 남 사장을 둘러싼 의혹은 많았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 사장에 올라 이명박 정부 때에도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실세와 친분이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 공기업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한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일 뿐이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산은 자회사 인사에 대해 “청와대가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 산은이 3분의 1 정도였다”고 폭로한 것은 결코 과장한 말이 아니다.

다른 발언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대목에선 절대 다수의 관련자들이 뜨끔했을 것이다. ‘3분의 1 비율’은 관가에서 불문율처럼 내려온 인사 원칙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그룹에서 출발한 민간기업이다. CEO도 정통 기업인 출신이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정부가 대주주가 되면서 지배구조가 애매해졌다.

CEO는 사실상 청와대가 임명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낙하산 인사만 하고 떠났다. 지분 구조상 민간기업이니 대우조선해양은 감사원이나 금융감독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시어머니들은 다 떠난 셈이다. 마지막 남은 ‘감시자’는 바로 대주주인 산은이었다. 하지만, 대주주라도 산은이 대우조선을 견제하긴 어려운 구조였다. 청와대 낙하산 CEO를 견제할 수 있었겠는가. 견제하기보다는 자기네 임원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며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

겉은 민간기업인데 속은 공기업 같은 이런 기업 구조는 새처럼 날아다녀 뭇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유일한 포유류인 ‘박쥐’를 연상케 한다.

사실 이런 문제를 가장 먼저 안 것은 대우조선의 하청업체들이었던 것 같다. 최근 우연히 만난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다른 조선소보다 1시간 늦게 출근하고, 1시간 먼저 퇴근하고, 만나면 돈부터 요구했던 이상한 기업이었다”고 회상했다.

주변을 보면 겉은 민간기업인데, 공기업처럼 운영되는 기업들은 의외로 많다. KT도 그런 기업에 가까워 보인다. 공기업으로 출발한 KT는 지금은 민영화된 기업이다. 그러나 CEO부터 사외이사까지 고위 임원 인사는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히 민간기업인데, 하는 일은 공기업 같고, 조직 운영도 공기업 같은데 그럼에도 감사원 감사는 받지 않는 기업들이다. 각종 비리로 얼룩진 포스코 역시 ‘박쥐 기업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금융권에선 대표적으로 유암코(연합자산관리)를 들 수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암코의 대주주는 은행이다. 민간기구이지만, 업무 특성상 실질적으로는 금융위원회가 지배한다. 그러면서도 금융감독원의 검사는 받지 않는다. 유암코는 최근 구조조정 기업으로 오리엔탈정공을 인수했다. 하지만, 어떻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지 아는 이는 없다.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지 않는 한 제2의 대우조선해양은 또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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