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진보인 당신, 보수 페친이 있나요?

입력 2016-06-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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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모바일팀장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한 백인 남성이 아이를 안고 욕실에 앉아 있다. 샤워꼭지에선 물줄기가 쏟아지고 남성의 품에 안긴 어린 아이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남성과 아이는 모두 발가벗었다. 페이스북은 이 사진을 ‘누드’로 봤다. 알고리즘 정책에 의해 사진은 뉴스피드에서 사라졌다.

최근 영국 일간지 ‘미러’는 이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사진을 찍은 이는 아이의 엄마, 남성은 아이의 아빠였다. 내용인즉, 한 살도 안 된 아이가 갑자기 구토를 하며 열이 펄펄 끓자 아빠가 열을 내리기 위해 아이를 안고 찬물을 맞은 거였다. 병원은 너무 멀고, 얼음을 문질러도 고열이 가라앉지 않자 취한 행동이었다. 11월의 어느 날 아빠는 아이를 끌어안고 몇 시간이나 찬물을 견뎌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인식한 ‘벗은 사진’은 실은 부모의 사랑과 인내가 담긴 뭉클한 장면이었다.

지난달 페이스북 ‘트렌딩 토픽(Trending topic)’ 섹션이 보수성향 뉴스를 배제했다는 의혹에는 이러한 알고리즘의 한계와도 관련이 있다. ‘트렌딩 토픽’은 페이스북 이용자가 자주 찾는 주요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다. 페이스북이 밝힌 트렌딩 토픽 편집 내부문서에 따르면 사람이 개입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원래는 알고리즘만으로 관리했는데 2014년 아이스 버킷 챌린지만 너무 많이 올라간 나머지 백인 경찰관이 비무장 흑인 소년을 무참히 사살한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어서다. 트렌딩 토픽팀에서 일했다는 한 직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작년 파리테러가 일어났을 때 해당 기사가 트렌딩 토픽에 포함될 수 있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사실 ‘트렌딩 토픽’은 페이스북 서비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권에서만 제공되는 기능이다. 모바일에서는 노출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편향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이유는 15억명이 사용하는 거대 네트워크의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해서다. 물론 이용자들의 배신감도 거들었다. 알고리즘만을 이용해 중립적이고 다원적으로 뉴스를 선정한다고 해놓고선 사람이 뒤에서 조작하고 있었다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알고리즘은 중립적일까? 페이스북 주요 서비스인 뉴스피드의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뉴스피드의 콘텐츠 노출 우선순위 기준은 친밀성, 가중치, 신선도를 중심으로 한 ‘엣지랭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각 요소의 가중치를 비롯해 다른 세세한 정보는 드러나 있지 않다. 대신 페이스북은 상호작용 내용이나 콘텐츠 체류시간 등 중요한 알고리즘 변동 사항이 생길 때마다 이를 공개하며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의 목표는 명확하다. ‘개인형’ 혹은 ‘맞춤형’이다. 더 똑똑해진 알고리즘으로 우리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알아서 보여주겠다는 거다.

문제는 정교해진 맞춤형 알고리즘은 더욱더 편향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은 ‘친구’라는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이뤄진 공간이다. 친구란 원래 ‘끼리끼리’ 모이게 마련이다. 특히 정치성향에 관해서라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생각과 의견이 다른 페친의 이야기나 페이지를 팔로하거나 ‘좋아요’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런 데다 페이스북 알고리즘마저 ‘(진보적인) 당신이 열광할 만한 콘텐츠’, ‘(보수적인) 당신이 꼭 봐야 할 콘텐츠’를 우선순위로 제시한다면 좌편향이나 우편향의 기울기는 더욱 커지지 않겠는가.

“우리는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힘을 가질 때 세상이 더 좋아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트렌딩 토픽 사건 이후 올린 글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내게 맞는’ 정보만 보여준다면 다양한 정치색과 열린 세계를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저커버그의 ‘해커웨이(Hacker Way)’ 안에서 길을 잃는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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