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프로야구 FA와 수저계급론

입력 2015-12-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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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스포츠레저학부 교수

얼마 전 박석민 선수가 5년 총액 96억원에 FA(자유계약선수)를 체결하면서 NC로 이적했다. 정우람 선수도 한화이글스로 이적하면서 4년 총액 84억원에 계약을 완료했다. 두 선수의 평균 연봉은 무려 21억원. 힘겹게 생활하는 월급쟁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금액이다. 그리고 이 엄청난 연봉이 초래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자연스레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소위 ‘수저계급론’을 떠올리게 한다.

수저계급론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부의 크기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나뉜다는 내용이다. 즉, 얼마나 ‘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가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 자조적인 표현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대석학 토마 피케티 교수도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성장률 둔화로 인해 노동을 통한 수익보다 과거의 부로부터 얻는 수익이 더 중요해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현재 FA를 체결한 19명의 계약 총액은 무려 723억원이 넘는다. 역대 최대 규모다. 수저계급론에 따르면 가히 ‘금수저’ 급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의 ‘정금화(正金化)’의 시작은 투박하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던 ‘사금(砂金)’, 즉 흙 속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현재 KBO규정에 따르면 선수들은 FA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9시즌을 뛰어야 한다. 4년제 대학졸업자에 한해서는 8시즌을 뛰어도 FA 자격이 주어진다. 통상 2년간의 군 생활을 포함한다면, 최소 10년 이상 선수 생활을 해야만 FA 자격을 획득할 수 있으며, 20세부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면 30살이 넘어야 FA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0세. 선수에게는 황혼기에 접어드는 시점이다. 그들이 정금같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10년이라는 흙을 토해내는 사금의 추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스포츠에서 선수들은 구단과 함께 상품 및 서비스의 공급자이자, 구단에게 고용된 내부 고객이다. 즉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단방향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받는 관중석의 고객들과는 다르게, 선수들은 구단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중간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선수가 잘된다는 것은 공급자인 구단과 소비자인 관중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필요조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작금의 프로스포츠는 선수가 잘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는가? 사금에서 정금으로 성장할 수 있을 만큼 수직 이동이 가능한 토양인가?

스포츠만큼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이 그대로 투영되는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정신이라 함은 시상대에 오르는 기쁨을 혼자 만끽하는 승자 독식이 아니다. 오히려 시상대에 오르기 위해 땀과 눈물을 닦고 있는, 뒤처진 누군가에게 넉넉한 손길을 줄 수 있는 정신이다. 과정이 무시된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상위 5%가 전체의 52%, 상위 10%가 전체의 63%에 달하는 부를 독식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과 같이 소수가 전체의 부를 급속도로 잠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프로야구의 21억 연봉과 2700만원의 최저연봉을 보며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피케티 교수는 양극화 해결을 위해 부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한 균형적 성장을 주장했다. 즉 이는 선수들의 균형적 수직 성장을 위한 튼튼한 뿌리, 좋은 기후, 적당한 햇빛과 물과 같은 강력하고 근본적인 제도의 시행을 의미할 것이다. ‘부자 선수-가난한 선수’, ‘부자 구단-가난한 구단’이 상생할 수 있는 선진화된 시스템과 제도가 필요하다. KBO와 구단이 깊이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필자는 정확히 1년 전에도 프로야구 FA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투고한 적이 있었지만, 1년 동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묻고 싶다. 프로야구, 상생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가? 금수저의 독식인가, 모두의 번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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