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우물 안 개구리’ 못 벗어나는 한국금융

입력 2015-11-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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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민 자본시장부장

유재훈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은 지난달 중순 싱가포르에서 열린 ‘SIBOS 2015’ 연례회의에서 아쉬움이 많았다고 한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국인은 유 사장과 뉴욕은행에 근무하는 직원 단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SIBOS(SWIFT·International Banking Operations Seminar)는 세계 금융시장 발전을 도모하고자 각국 금융기관·시장인프라 제공기관·다국적기업 리더들이 참석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다. 특히 개별·그룹 별로 미팅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매년 세계 금융기관이나 금융 관련 기업엔 세계 최대 행사로 꼽힌다.

유 사장은 “140여개국의 1만여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 혼자 참석한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해 씁쓸했다”며 “다른 국가에서 다른 한국 파트너를 찾을 땐 얼굴이 화끈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른 국가들은 금융 관련 작은 기업도 이번 회의에 참석해 각국 금융기관의 금융 아이디어나 바이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자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있는데, 우리 금융기관은 왜 참석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회의가 통역 없이 영어로만 진행돼서인지 아니면 회비가 700만원에 달해 부담을 느껴서인지 잘 모르겠으나, 금융 세계화를 외치는 우리 금융기관이 실제 의지가 있는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유 사장과 지난달 중순경 점심을 같이하며 나눈 말이다. 한국 금융의 초라한 현실을 꼬집는 말이어서 우리 금융산업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

최근 국내 증권사들은 내년 자본시장 업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며 선제적 구조조정이나 피해 최소화에 골몰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들리는 말이다. 실제 증권사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곳도 있고, 해외지점 중 적자 점포를 정리하는 증권사도 잇따르고 있다.

업황이 힘들 때마다 단골 메뉴로 나오는 것이 해외지점 폐쇄다. NH투자증권의 내년 초 싱가포르 법인 정리 예정과 2013년 현대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런던법인 철수 등 해외점포 철수는 증권사로서는 매력적인 비용절감 구조조정 대상이다. 실제 해외점포가 증권사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당기순이익의 1%대에 지나지 않아 업황이 좋지 않을 때 이들 점포의 폐쇄는 손쉽게 손댈 수 있는 구조조정 대상이다. 정부와 증권사들은 국제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고 실효성 있는 해외진출 계획을 하고 있지 않아 이 같은 해외점포 폐쇄와 신설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2년 미국에 진출한 증권사 현지법인을 취재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해외 현지법인 설립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상은 직원 4~5명이 상주하는 사무소 규모에 지나지 않아 적지 않게 실망한 적이 있다. 당시 한 미국 상업은행으로부터 왜 한국이 IMF 때 구제금융을 착실히 갚아 대외 신뢰도를 쌓아놓고 미국 현지법인이나 지점을 철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만큼 미국 내에서 이너서클에 포함되지 않은 금융사가 현지 영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뢰를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당시 증권사 현지법인 법인장들도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의 규모가 너무 작은데다 업력이 없어 장기적 관점의 지원과 세계 4대 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외환위기 이후 해외 지점폐쇄 상황이나 지금 증권사들의 해외 지점 폐쇄 상황이 비슷할 정도로 국내 금융사들이 우물안 개구리식 영업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의 금융사 세계 경쟁력 강화도 구호만 요란할 뿐 실질적인 지원책은 요원하다는 것이 현지 진출 법인들의 토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한국금융 경쟁력이 조사 대상 140개국 가운데 87위를 차지해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기보다는 국내 금융사의 현실을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대우증권 매각 과정에서 보여준 참여 업체 헐뜯기나 매각 금액이 높은 곳에 매각하겠다는 산업은행의 기본 방향은 글로벌 금융사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한다. 예전 강만수 회장의 산업은행이 우리은행을 인수해 메가뱅크로 키우겠다고 했을 때도 결국 다른 금융권의 방해로 좌절된 바 있다.

정부는 이번 대우증권 매각과 관련해 단순히 가격이나 다른 영향력에 매각을 좌지우지하기보다 세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금융사가 어디인지 충분히 검토해 우선협상자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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