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폭파 후 김현희씨는 자신의 신분이 들통 나자 자살용 앰플을 깨물었다. 공범인 김승일(하치야 신이치)은 즉사했지만 김현희씨는 응급처지를 받아 목숨을 건졌다.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1990년 노태우 정권 시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김현희 씨는 사건 이후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우선 1987년 11월29일 미얀마 벵골만 상공에서 KAL858기가 폭발해 승객 115명이 전원 사망한 것이 국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투표일을 불과 10여일 앞둔 북한 공작원에 의한 테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민주당 김대중, 국민당 정주영 등 3명의 후보가 ‘3파전’을 벌이고...
지난 1979년 12월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이 일어난 날이라는데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10·26사건을 수사하면서 군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연행했다.
이는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없이 벌어졌으며 사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노태우 회고록’에서 지난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 측에 선거자금으로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 돈을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과 이원조 전 의원을 통해 전달했으며, 녹취록도 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제공을 공개한 것은 “비자금으로 파생된 일들로...
최근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1990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 당시 “가계를 살펴보면 모계에 한국계 인물이 있는 듯하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메이지 시대 이후 첫 평민출신으로 알려진 미치코 왕후와 1959년 결혼했고 현재 장남인 나루히토 왕태자와 차남 후미히토, 사야코 등 2남 1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