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관리가 부음을 알리자 왕은 그 절의가 한결같음을 찬탄하고,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 진혜대사’로 추봉하였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승려가 되었음에도 그녀가 원래 갖고 있던 ‘OO부인’이라는 봉작명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그냥 ‘진혜대사’가 아니라 ‘변한국대부인 진혜대사’이다. 이는 결국 여성의 수도를 종교적인 성취보다 수절의...
고려는 1231년 몽골이 침입해 오자 이듬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이후 40여 년간 항전하였다. 유례없이 긴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오랜 전쟁에 지친 양국은 화의를 맺고, 1270년 마침내 고려는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그러나 삼별초는 개경으로 오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항전을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대에 ‘한국의 어머니’로 재탄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임당은 조선사회 최초로 당대 재능으로 명성을 떨친 여성이다. 따라서 사임당에게 덧씌운 이미지를 걷어내고 진면목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1809년(순조 9) 조선 사회에서는 여성이 쓴 기념비적인 전문서 한 권이 등장했다. 바로 이빙허각(李憑虛閣·1759~1824)의 ‘규합총서(閨閤叢書)’였다.
규합은 여성이 머무는 거처 또는 여성을 의미하므로 규합총서를 풀이하면 가정학 총서가 된다. 그런데 당시 의식주에 대한 탐구는 여성이기에 갖는 관심이 아니었다. 성리학에서 출발해 실용 학문으로 외연을 넓혀가던...
문정왕후(文定王后·1501~1565)는 중종의 세 번째 왕후다. 윤지임(尹之任)의 딸로 1517년 열일곱에 왕후가 되었다. ‘문종실록’에서 사관은 문정왕후에 대해 “천성이 강하고 사나우며 문자를 알았다”고 평했다.
중종에게는 3명의 왕후가 있었다. 그중 두 번째인 장경왕후의 아들이 중종을 이어 즉위했다. 곧 인종으로 불행하게도 8개월 만에 세상을 떴다. 이어 1545년 명종이...
최고 등급인 S등급은 없었고, 서울대병원과 전남대병원,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이 A등급을 받았다.
강원대병원, 경북대병원, 서울대치과병원,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 11곳은 B등급을, 강릉원주대치과병원과 부산대치과병원, 충북대병원 등 3곳은 C등급을 받았다. D등급과 E등급을 받은 곳은 없었다.
대부분 전년과 같은 등급을 받았지만 2015년도...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1735~1815)로 더 잘 알려진 헌경왕후는 장조(莊祖·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다. 아버지는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관찰사 이집(李潗)의 딸이다. 본래 세자빈이지만 고종 대에 ‘헌경왕후’, 대한제국기인 1899년에 ‘의황후’로 높여졌다.
1744년(영조 20) 동갑내기 사도세자와 가례(嘉禮)를 올리고 1752년 아들 정조를 낳았다. 하지만...
강정일당(姜靜一堂·1772~1832)은 20대 후반에 학문을 시작해 일가를 이룬 여성이다. 본관은 진주이며 충청도 제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강재수(姜在洙)이며 어머니는 권서응(權瑞應)의 딸이다. ‘정일당’은 남편이 부인의 학문과 실천을 귀하게 여겨 지어준 호(號)다.
정일당은 스무 살에 충청도 충주에 사는 14세의 선비 윤광연(尹光演·1778~1838)과 혼인했다. 정일당과...
수령옹주(壽寧翁主·1281~1335)는 원 간섭기(干涉期) 종친의 부인이다.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서 아버지는 밀직승지(密直承旨)를 지낸 김신(金信), 어머니는 재상을 지낸 윤번(尹璠)의 딸이다. 1294년(충렬왕 20)에 14세의 나이로 종친인 왕온(王昷)과 혼인하였다.
왕온은 옹주가 29세 때인 1310년(충선왕 2)에 사망하였는데, 당시 아들 셋과 딸 하나가 모두 어렸다. 옹주는...
정신부주(貞信府主·?~1319) 왕씨는 고려 충렬왕의 왕비이다. 충렬왕이 태자 시절인 1260년(원종 1) 태자비로 간택되었다. 아버지는 종친인 시안군(始安君) 왕인(王絪)이다. 1274년(원종 15) 태자비였던 정신부주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전쟁 종식을 위하여 몽골에 들어간 남편이 원세조의 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혼인을 한 것이다. 혼인한 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1259~1297)는 고려 제25대 왕인 충렬왕(1236~1308)의 왕비이다. 이름은 홀도로게리미실(忽都魯揭里迷失)이며, 원나라 세조의 딸로서 고려에 시집온 최초의 원나라 공주이다. 1274년(원종 15) 충렬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있을 때 혼인하니 공주 나이 16세, 충렬왕 나이 39세였다. 이 해에 원종이 죽어 함께 귀국하자 사람들이 “백년 전쟁 끝에 다시...
경창궁주(慶昌宮主) 유(柳)씨는 고려 제24대 왕인 원종(1219~1274)의 제2비이다. 아버지는 종친인 신안공 왕전(新安公 王佺)이며, 어머니는 희종(熙宗)의 딸인 가순궁주(嘉順宮主)이다. 1244년(고종 31) 원종이 태자였던 시절 태자비로 간택되었다.
원종은 1235년(고종 22) 태자로 책봉되어, 그해 최이(崔怡)의 외손녀인 김약선(金若先)의 딸[사후 순경태후(順敬太后)로 추존]을...
순경태후(順敬太后·1222~1237) 김씨는 고려 제24대 왕 원종이 태자 시절 맞아들인 비(妃)이다.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김약선(金若先)으로 신라 왕실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무인집정인 최우(崔瑀[怡])의 딸이다. 1235년(고종 22) 14세의 나이로 고종의 태자인 왕전(王倎, 뒤의 원종)의 비(妃)로 간택되어 경목현비(敬穆賢妃)로 책봉되었다.
이때만 해도 그녀는 세상에...
남평 조씨(南平曺氏·1574~1645)는 ‘병자일기(丙子日記)’라는 한글 일기를 남긴 양반 여성이다. 일기에는 1636년(인조 14) 12월 병자호란이 발발해 피란을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1640년 8월까지의 일상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조경남이며 어머니는 남원 윤씨다. 열일곱에 남이웅(南以雄·1575~1648)과 혼인했다. 남이웅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호종(扈從)해...
소설로 재탄생시켰고, 1977년에는 임권택 감독이 ‘임진왜란과 계월향’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계월향은 근거지가 ‘평양’이어서 대한민국에서 점차 잊혔다. 오늘날 통일을 지향하는 한국사는 계월향을 우리 사회로 다시 불러내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논개(論介·?~1593)는 경상도 진주 기생으로 임진왜란 중에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왜장을 유인해 남강에 함께 투신해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1593년 6월의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사에서 조선인의 희생이 큰 처절한 전투였다. 당시 성 안에는 군사 3500여 명과 주민 6만여 명이 있었다고 한다. 끈질기게 항전했지만 성은 함락되었고, 김천일(金千鎰)을 비롯한 여러...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이름이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이다. ‘난설헌’은 스스로 지은 호다. ‘초희’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의 지혜로운 아내 번희(樊姬)를 뜻하며 ‘경번’도 번희를 사모한다는 의미다. 아마도 번희처럼 남편을 지혜롭게 내조하라는 권고를 담았으나 난설헌은 다른 길을 걸어갔다.
대문장가 허엽(許曄)의 딸이자 허봉(許篈)...
장녹수(張綠水·?∼1506)는 한국사나 역사 드라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명도만큼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이 많지 않다.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해 수령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천첩 소생인 장녹수는 아버지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집이 가난해 몸을 팔아 생활했고 혼인도 여러 번...
처녀 왕씨(1141~1183)는 고려시대의 독신녀이다. 아버지는 정의공(定懿公) 왕재(王梓)로, 현종 임금의 넷째 왕자인 정간왕(靖簡王)의 5세손이다. 어머니 왕씨 역시 왕가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왜 혼인을 하지 않았을까? 또 혼인을 하지 않는 삶이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었을까? 우선 후자의 의문부터 풀어보도록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모든 여성이 혼인을 해야만 했다. 만일...
동래군부인 정씨(東萊郡夫人 鄭氏·1104~1170)는 고려 중기의 귀족부인이다. 본관은 동래(현 부산시 동래구)이며, 할아버지는 동래의 향리 자제로 개경에 단신 유학하여 입신(立身)한 정목(鄭穆)이다. 아버지는 예부상서 지추밀원사 한림학사승지 지제고(禮部尙書 知樞密院事 翰林學士承旨 知制誥)를 지낸 정항(鄭沆)이고, 어머니는 재상을 역임한 왕국모(王國髦)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