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허물을 벗는 모습은 경이롭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봐도 숨이 멎을 정도이다. 그믐날 어둠이 깔리면 매미는 천적의 눈을 피해 허물을 벗기 위하여 땅 위 세상으로 나온다. 고통을 이겨낼 굳은 마음으로 나무줄기에 발톱을 단단히 박는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면 자기 몸을 보호하던 껍질을 있는 힘껏 벗어 던지고 날개를 펼친다. 7년의 고행 끝에 완전히 다른...
추석의 순우리말인 한가위는 ‘한+가위’ 형태이다. 한은 ‘크다’, ‘많다’를, 가위는 ‘가운데’를 뜻하니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의미이다. 가배(嘉俳), 가배일, 가윗날 등도 추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릴 땐 명절 전날이면 온 가족이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다. 집에 목욕탕이 없거니와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엄마한테...
우레는 천둥의 순우리말로, 우레비는 말 그대로 천둥이 치면서 내리는 비이다. 가루처럼 뿌옇게 내리는 가루비, 실처럼 가는 실비, 가랑비 등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거칠다.
‘우레라고? 우뢰가 바른 말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이가 많겠다. 우레의 이전 표준어가 ‘우뢰’이니 그럴 만도 하다. 우레는 우레→우뢰→우레 순으로 표준어가 바뀌었다. 우레는 동사 ‘울다...
‘중로상봉’은 추석 즈음에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하며 회포를 푸는 풍습으로, 우리말로는 ‘반보기’이다. 출가한 여성에게 언감생심 친정 나들이가 허락되지 않던 먼 옛날 이야기이다.
조우와 해우는 ‘우연히’, ‘뜻밖에’ 만났을 때 적합한 말이다. 둘 다 ‘약속하지 않은 만남’이지만 의미상 차이가 있다. ‘조우’는...
더위를 표현하는 우리말은 참 많다. 무더위,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강더위, 불볕더위, 불더위…. 우리말만큼 섬세한 언어도 없을 듯싶다. 더위는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소나기 등으로 습도가 매우 높아,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는 무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이다. 이 중 최악은 가마솥더위. 물이 펄펄 끓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가마솥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사리는 순우리말이다.
사리는 동사 ‘사리다’에서 왔다. ‘사리다’는 국수, 새끼, 실 등을 동그랗게 포개어 감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동그랗게 감은 뭉치나 그 수량을 세는 단위가 ‘사리’다. ‘냉면 사리’ ‘라면 사리’ ‘당면 사리’ ‘국수사리’ 등으로 쓰인다. 이 중 국수사리는 한 단어로 국어사전에 올랐으니 붙여 써야 한다.
‘사리다’는 뱀 등이...
‘아줌마와 조직폭력배의 공통점’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우르르 몰려다닌다, 형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칼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이따금씩 애들을 손봐 준다, 가끔 큰집에 간다….
우르르 몰려다니진 않지만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아줌마’ 모임이 있다. 함께 운동하는 이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인데, 매달 새로운 주제로 수다를 떨고 있다. 필자를 ‘형님’이라...
많은 이들이 ‘철’을 한자로 생각하는데, 순우리말이다. 봄철, 여름철 등과 같이 자연현상에 따라 한 해를 구분하는 계절을 가리킨다. 그래서 계절이 바뀔 때 “철이 바뀌었다”고도 표현한다. 철은 또 한 해 중 어떤 일을 하기 딱 좋은 시기나 때를 뜻하기도 한다. “6월 말은 모내기 철이라서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다” 등으로 활용한다. “살아남은 과목들은 제철만 되면...
악수가 보편적인 인사 예절로 자리를 잡았다. 전통 인사법인 절(拜)보다 간편하기 때문이리라. 악수만큼 합리적인 스킨십이 또 있을까? 악수는 나라마다 예절이 조금씩 다르다. 일본은 악수할 때 허리를 숙여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손을 잡고 상체를 깊숙이 숙이는 게 정중한 태도이다. 중국은 연장자 순으로 악수를 청하며 손을 가볍게 잡아야 한다. 눈을 마주 보는 것은...
미인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기준이 다를 터. 동서양 미인의 차이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전통 미인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눈, 코, 입이 작고 눈썹은 초승달 모양이다. 이마는 반듯하고 얼굴은 통통해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다소곳한 분위기를 풍긴다. 서양의 미인은 어땠을까. 역사상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클레오파트라의 얼굴(로마시대...
한자어에 기반한 명칭들이 하나같이 어렵고 멀게 느껴지니 친근한 우리말로 대중에게 더 가까이 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결국 지난해 10월 조계종 등 불교계의 지속적인 요청에 의해 석가탄신일이 부처님오신날로 변경되었으니, 공식적인 부처님오신날은 올해가 처음인 셈이다.
부처님오신날의 띄어쓰기가 궁금하다. 한글맞춤법 규정상 ‘문장에서 각 단어는 띄어...
시집의 순우리말은 ‘싀집’, 새로운(新) 집을 의미한다. 시댁,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등 ‘남편의’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시(媤)’에는 여인(女)이 늘 마음을 써서(思) 섬겨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결혼 문화가 참 많이 변했다. 장가들거나 시집가는 신랑·신부는 드물다. 대부분 신혼집을 마련해 따로 생활한다. 신혼집을 장만할 능력이...
막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입맛이 없을 땐 톡 쏘는 매운맛이 몰아치는 비빔 막국수가 최고다.
“이렇게 맛있는 국수에 왜 ‘막’ 자를 붙여 홀대했을까?” 함께 먹던 이가 한마디 툭 던진다. ‘막’을 ‘닥치는 대로’, ‘품질이 낮은’, ‘아무렇게나 함부로’ 등 부정적인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생각한 모양이다.
국수를 내주며 건넨 식당 주인 할머니의 말...
제주의 동백꽃은 곱디곱다. 수줍어 볼이 빨개진 소녀의 얼굴 같다. 그래서일까. 사월 따뜻한 봄날에 갑자기 ‘툭’ 하고 꽃이 통째로 떨어지면 제주도민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한창 예쁠 때 한순간에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모습이, 그 옛날 차갑게 얼어붙은 땅 위에 스러져간 ‘금쪽같은 내 새끼’ 같아서이다. 아기도 소녀도 소년도 청년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러고 보니 기분 좋을 정도의 짠맛을 표현하는 우리말이 꽤 있다. 짭짤하다, 짭짜래하다, 짭짜름하다, 짭조름하다…. 음식이 ‘감칠맛 나게 조금 짤 때’ 쓸 수 있는 말들이다. 음식이 조금 짠 듯하면서도 입맛에 맞을 땐 ‘간간짭짤하다’라는 표현을 써도 좋다. “입맛이 없을 때는 간간짭짤한 반찬이 최고지”, “그는 간간짭짤하게 맛있는 젓갈로 밥 한 공기를 뚝딱...
순우리말 는개는 빗줄기가 몹시 가늘어서 안개가 늘어진 것처럼 부옇게 내리는 비다. ‘비’ 돌림에서 벗어난 재미있는 비가 또 하나 있다. 메마른 땅에 겨우 먼지가 나지 않을 정도로 조금 내리는 ‘먼지잼’이다. ‘잼’은 ‘재움’의 줄임말로 보인다. 는개와 먼지잼, 옛사람들의 말 만드는 솜씨에 감탄할 뿐이다.
초봄에 내리는 비는 낭만적이긴 하나 조심해야 한다....
“홀딱 벗고 혼자 쳐도 본전이 안 맞는다.” 화투판에는 잃은 사람만 있다는 이야기이다. “비풍초똥팔삼”, 화투판에서 패가 꿀릴 때 버리는 순서이다. “삼고초려”, ‘스리고’를 부를 때는 상대의 ‘초단’을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못 먹어도 고(이판사판, 실패 가능성이 있더라도 강행한다), 유비무환(‘비’ 들고 있으면 ‘피박’ 염려 없다)….
화투판에서 통한다는...
설날 무렵에 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40여 년 전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오래된 일인데도 그때의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뒷간 귀신’ 이야기이다.
세 살 터울 지는 동생이 여섯 살 때 뒷간에 빠졌다. (아아, 뒷간이 뭔지 모르는 이들이 있으려나? 뒷간은 변소를 완곡하게 표현한 말로, 밑이 뻥 뚫린 재래식 화장실이다.) 동생은 유난히...
“철아, 잘 가그레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차갑게 얼어붙은 강물에 뛰어들어 재가 된 아들을 한 줌 한 줌 뿌리며 통곡하는 아버지의 설움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탄식과 눈물이 넘쳐났다.
영화 ‘1987’을 봤다. 쉰 살 언저리 동년배로 보이는 이들이 상영관의 많은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친구의 조언대로 손수건을 챙긴 건 참...
역시 세월은 약이다. 가족 모임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엄마도 이젠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신다. 아버지는 별이 되었을 거라고. 어둡고 추운 날 별이 더욱 빛나듯이 자식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다섯(5남매) 마음을 하나로 오롯이 모아주는 것 같다고. 살아생전 아버지는 다정다감했고, 특히 아내 사랑이 남달랐다. 그래서 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