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金明淳)은 나혜석·김일엽과 함께 근대문학 초기 한국의 문단을 이끌었던 여성 문인이자 번역가이다. 김명순은 1896년 평양에서 갑부 김가산 소실의 딸로 태어나 기독교 계통인 사찰골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진명여학교, 이화학당을 거쳐 동경여자전문학교에서 수학한다.
1917년 당대 문학청년들의 로망이었던 잡지 ‘청춘’(12호, 최남선 주재)의 현상...
‘허무’의 시인 강은교(姜恩喬)는 1970~80년대 한국 대표 여성 시인이다. 1945년 12월 13일 함경남도 홍원군 풍산리에서 태어나 100일 만에 서울로 월남한다. 이미 월남한 아버지와 만난 그는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또 다시 관직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난 아버지를 찾아 부산으로 피란을 가게 된다.
방위(龐偉)의 박사논문에 의하면, 이때의 월남...
남평 조씨(南平曺氏·1574~1645)는 ‘병자일기(丙子日記)’라는 한글 일기를 남긴 양반 여성이다. 일기에는 1636년(인조 14) 12월 병자호란이 발발해 피란을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1640년 8월까지의 일상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조경남이며 어머니는 남원 윤씨다. 열일곱에 남이웅(南以雄·1575~1648)과 혼인했다. 남이웅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호종(扈從)해...
만해 한용운이 ‘계월향에게’라는 시까지 남길 정도였으니 어느 시절에는 유명하던 여성임에 틀림없다.
조선 후기 역사가 이긍익(李肯翊)이 지은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실린 계월향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장 중에 용력(勇力)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 계월향이 그에게 잡혀 총애를 받았다. 계월향은 탈출하기 위해...
덧붙여진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또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채색되고 엮어졌다는 점에서 ‘만들어진’ 역사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 시대는 논개를 어떤 인물로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동생 허균의 회고에 따르면, 10대 중후반 무렵 한 살 아래의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했으나 부부 사이가 안 좋았고 시어머니 맘에도 들지 못해 마음고생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아이 둘마저도 일찍 저세상으로 갔다.
난설헌은 스물일곱에 죽었는데 기록을 보면 석연치 않다. “나이 스물일곱에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1506년 겨울 연산군은 왕위에서 쫓겨난 지 두 달 만에 유배지 강화도 교동에서 세상을 떴다. 왕의 여자로 살던 장녹수도 연산군이 몰락하자마자 파국을 맞이했다. 연산군이 유배를 떠난 날에 장녹수의 참형이 결정되었다. 5~7년여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후 맞이한 비극적 결말이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어머니 왕씨 역시 왕가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왜 혼인을 하지 않았을까? 또 혼인을 하지 않는 삶이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었을까? 우선 후자의 의문부터 풀어보도록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모든 여성이 혼인을 해야만 했다. 만일 여성이 서른이 넘도록 혼인을 하지 못하고 있으면 국가에서 가장을 문책하고, 가난해 혼인을 못 할 경우는 혼인비용을 대주었다. 이처럼...
동래군부인은 고려의 문화와 국력이 크게 성하였던 시절,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부덕을 갖춰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했으며, 그 결과 남편과 자식들이 크게 성공하였다. 그녀는 1170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아들은 네 명으로 당재(唐宰), 당주(唐柱), 당준(唐俊), 당필(唐泌)이 모두 벼슬하여 높은 관직에 올랐다.
평량군부인은 고려시대 청빈한 삶을 영위하려 애쓰던 관료의 삶, 그리고 그 아내의 내조를 잘 보여준다. 아울러 불교를 독실히 믿고, 가정 경영의 주체이던 여성의 모습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이 여성이 사평왕후(思平王后)로, 같은 해 이의방이 살해되면서 그녀 역시 폐비되었다. 이에 1175년 원덕태후가 두 번째 태자비로 간택되었다.
명종은 비록 실권이 없는 왕이기는 했지만 장수하여 무려 27년간 재위했고, 태자부부는 오래도록 태자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들 부부는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혼인한 지 17년 만인 1192년에 드디어 아들 고종을 낳았다....
태후는 1222년 사망했다. 능을 진릉(眞陵), 시호를 선정태후(宣靖太后)라 하고, 뒤에 신헌(信獻)이라는 시호를 추가하였다. 그녀는 시련 속에서도 왕비 및 태후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은 여성이었다 하겠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박제상 부인의 혼이 새가 되어 그 동굴에서 조금씩 쌀을 흘려보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당시 신라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린 제상보다 남편을 향한 애통함에 애간장이 녹아나던 치술부인의 심정에 더 공감하였다. 신라인들의 공감과 바람 속에서 치술부인은 치술신모가 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당시 왕은 주몽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다. 왕이 죽은 후에 주몽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이후에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인 유류(孺留)가 찾아오자 설 곳을 잃은 비류와 온조는 남쪽으로 떠났다. 온조는 한수 남쪽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류는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미추홀이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살 수가 없으므로...
사씨(史氏)는 신라 최초의 여성 출가자이다.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래한 이는 고구려 사람인 아도(阿道 또는 我道)이다. 아도가 처음 신라에 와서 불법(佛法)을 전하려고 할 때에 신라 사람들은 매우 꺼리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아도는 일선현(一善縣·지금의 경북 구미)에 있는 모례(毛禮)의 집에 도망쳐서 숨었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모례는...
아도는 신라에 처음으로 불법(佛法)을 전한 인물이다. 삼국유사 흥법편(興法篇)에 실려 있는 아도본비(我道本碑)에 따르면 아도가 신라에 불법을 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도의 어머니인 고도령 덕분이었다고 한다. 중국 위(魏)나라 사람인 아굴마(我崛摩)가 정시(政始) 연간(240~248)에 고구려에 왔는데, 그와 고도령이 사통(私通)을 해서 낳은 아이가 아도이다....
부인견학단을 조직, 인솔하는 한편 가정란을 신설해 ‘첫 길에 앞장선 이들’을 연재하는 등 여성의 사회화에 힘쓰며, 적극적으로 여성 기자의 영역을 개척하였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교 법과 2년을 수료하고, 1927년 유영준, 황신덕과 함께 근우회 발기인 및 창립준비위원으로 동회를 조직하였으며, 숙명여고보의 동맹휴학을 지원하여 학교 당국을 규탄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살림꾼, 정정화(鄭靖和·1900~1991)는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손색이 없다. 그의 일대기 ‘녹두꽃’은 여성 독립운동사 연구에 한 이정표(里程標)가 된다.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충남 예산의 대지주 집안 출신인 아버지가 공부를 반대하는 바람에 오빠의 어깨너머로 천자문, 소학 등을 어려서부터 다 익힌 총명한 소녀였다. 1910년 11세에...
이때 민족사회와 여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도쿄여자유학생친목회 회지 ‘여자계’를 나혜석 등과 함께 만들며 여자 유학생들을 이끌었다. 방학 때는 귀국하여 주로 여성의 의식을 일깨우고 위생 관념을 강조하는 강연을 하며 전국을 순회하였다.
1925년 귀국하여 김약수, 이여성 등이 도쿄에서 조직한 사상 단체인 일월회(一月會)의 발회 기념강연에서...
1919년 남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참여한 3·1항일 만세시위의 횃불을 높이 든 사람 중 대표적인 여성은 단연 김마리아(金瑪利亞·1892~1944)다. 황해도 장연에서 일찍이 기독교를 접하고 개화된 아버지 김윤방과 어머니 김몽은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소래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반드시 대학 공부까지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상경, 언니 함라, 미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