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영의 너섬만필] 실종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입력 2014-04-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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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 선생님·교수님처럼 직업명 뒤에 ‘님’자가 붙는 몇 안 되는 직군 중 하나가 바로 의사다. 다른 전문직 종사자와 함께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로 대접받는다. 의사가 이 같은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데는 그들의 업무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과 직결돼 있다는 이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고 서약하며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고 맹세한다. 양심과 품위를 기본으로 의술을 베푸는 의사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의사의 사회적 책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그 유서가 깊다.

그런데 의사가 어느 순간 밥그릇만 챙기려는 ‘밥버러지’마냥 비쳐지면서 의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종되고, 의사에 대한 경외심이 무너지고 있어 안타깝다.

국세청의 기획세무조사만 봐도 그렇다. 때마다 이름을 올리는 사회계층이 바로 의사다. 세금을 빼먹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정잡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약방의 감초’ 격이 아니라 어느 땐 의사집단을 겨냥한 기획조사가 있을 정도로 의사는 탈세를 밥 먹듯 하는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최근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의료파업 역시 마찬가지다. 2000년엔 의약분업, 2012년엔 포괄수가제 도입에 반대하며 파업에 나섰던 그들이다.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결연한 의지의 표현으로 진료를 거부한다고 했지만, 실상 밥그릇 문제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국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복학습의 효과다.

지난달 10일 집단휴진 사태 이후 머리를 맞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가 2차 합의안을 도출, 두 번째 집단파업의 고비를 넘긴 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의료파업의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더구나 작금의 위기가 의협 내분 사태에서 비롯됐음은 더욱 유감스러운 일이다. 의협은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새 비대위에는 노환규 의협 회장을 배제키로 했다. 한술 더 떠 새 비대위는 2차 의·정 합의안을 재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기존 2차 합의안의 부정 내지는 폐기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의협의 자중지란은 내부 권력투쟁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노 회장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와 반대파 간의 갈등이 빚은 결과라는 것이다. 강경파니 온건파니 하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이 모두 의사집단 내부의 문제일 뿐이다. 국민과 환자들은 의사들이 실종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되찾길 바라고 있다.

귀족이 없는 한국사회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양반 또는 선비정신 정도 되겠다. 박지원의 ‘양반전’을 보면 양반은 배가 고파도 참아야 하며, 가난함을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고루한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좀더 해 먹겠다고 아우성하는 꼴이 정말 볼썽사나워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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