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 제작진이 만든 ‘트로트 엑스’, 뚜껑 열어보니 [이꽃들의 36.5℃]

입력 2014-03-24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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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열린 엠넷 '트로트 엑스' 기자간담회에서 출연진.(사진=노진환 기자 myfixer@)

“엠넷이 어떻게 트로트 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지 보여주겠다.”

역시 영악했다. 몇 년 전부터 트렌드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그 까닭에 과잉을 가져온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피로도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 그럼에도 엠넷은 새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탄생을 큰 주변 잡음 없이 차곡차곡 준비하더니, 21일 엠넷 ‘트로트 엑스’(연출 김태은)의 화려한 막을 대중 앞에 공개했다.

‘트로트의 재해석과 스타 탄생을 기대하게 하는 음악쇼’라는 이름으로.

기자간담회 전부터, 제작진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절대 아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라고 확고하게 강조했다. 엠넷 김기웅 국장은 “상상할 수 없는 분들이 많이 나온다. 오디션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다양한 경력과 재능을 가진 분들이 나온다. 노래 수준도 어떤 서바이벌이나 오디션보다 뛰어나다. 음악쇼지 단순한 오디션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은 PD 역시 “트로트 엑스는 최고의 트로트 가수를 뽑는 프로그램 아닌, 트로트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격이 더 강하다”며 “이에 8명의 트로듀서들의 면면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는데, 음악적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앞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화려한 입담과 센스를 뽐냈던 분들로…”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프로그램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수사일 뿐이다. 첫 회에 등장한 심신, 베베미뇽의 벤 등을 시작으로 앞으로 수많은 연예인의 등장이 예고된 가운데 버라이어티쇼의 면모를 펼쳐보일 예능 담당 출연진과 다채로운 기성 가수의 출현만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임을 부인했다면 큰 오산이다.

소위 ‘뽕삘’이라는 단어가 쉴 새 없이 나오는 ‘트로트 엑스’는 EDM(전자 음악), 댄스뮤직 등 다양한 장르와 혼합과 변주를 시도할 예정이지만, 극 중 음악 장르로서 트로트를 분명한 토대로 삼는다. 이를 기준으로 오디션에서 걸러진 참가자만이 TD(트로트+프로듀서ㆍ태진아, 설운도, 박명수, 아이비, 박현빈, 홍진영, 뮤지)의 선택을 받아 팀을 이루고 비로소 서바이벌 공연 무대에 오를 수 있다. 기성 가수나 연기자, 개그맨이라 할지라도, 기존 장르의 경력은 무색해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프로그램 속을 들여다 봐도 그렇다. 최종 우승자에게 5억 원의 상금이 주어지는 ‘트로트 엑스’는 스타탄생의 자초지종을 시청자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장점을 그대로 지녔다. 방송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제작돌풍을 일으키는데 주된 역할을 해온 엠넷 ‘슈퍼스타 K’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편집과 재미 요소 그리고 일반인 참가자의 가족사 등을 여전히 선보인 것도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과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다. 그럼에도 이를 부인했던 것은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의 똑같은 스토리텔링, 그 반복과 과잉으로 인한 높은 피로감 탓에 시청자가 가질 수 있는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한편 여기에 색다른 재미를 유발하는 면면이 포착됐다. 참가자가 안타까운 가족사를 고백하던 중 “여기에 또 슬픈 음악이 깔리거나 하는 것 아니죠?”라며 상황을 반전시킨 것이다. 기존의 프로그램이 빈번했기에 거부감마저 들게 했던 요소에 제작진은 변주를 가했다. 또, 걸출한 가수 손승연을 배출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던 엠넷 ‘보이스 오브 코리아’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무대를 토대로 변화를 꾀했다.

얼굴이 가려진 참가자의 ‘보이스’, 즉 가창력만을 판가름해 각 심사위원이 버튼을 누른 뒤 참가자와 대면했던 ‘보이스 오브 코리아’처럼, ‘트로트 엑스’ 역시 우선적으로 가려진 장막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이를 유심히 살핀 TD(트로트 프로듀서)가 버튼을 눌러야만 참가자가 선택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참가자 스스로 공개 여부를 선택해 무대 초반부터 얼굴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이처럼 흥행 성공을 이끈 각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을 반영한 채, 변주를 가한 ‘트로트 엑스’는 겉보기에 빠진 나물 없이 고루 갖춰진 한상차림이다.

그렇다면 외형 이외에, 내면을 꽉 채울 프로그램의 원천은 과연 존재할까. 오디션 프로그램임을 인정하는 것 위에서 변주를 가한 음악쇼 버라이어티를 지향하겠다면 이야기는 더욱 쉬워진다. ‘트로트 엑스’를 제작하는 엠넷이 보인 자신감은 바로 트로트 장르가 가진 힘에서 찾을 수 있었고, 그만큼 트로트의 방향성도 중요하다.

19일 프로그램 첫 방송 이전에 열린 ‘트로트 엑스’ 기자간담회에는 우리나라 트로트 대표 가수인 태진아, 설운도부터 신세대 트로트 가수 박현빈, 홍진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가수 활동으로 큰 인기를 누린 바 있는 개그맨 유세윤, 박명수와 음악적 재능을 가진 뮤지 그리고 섹시 댄스가수 아이비까지 출연해 다채로움을 갖췄다. 음악이라는 코드로 묶인 것은 물론, 주로 대중에게 인지도까지 높은 이들은 트로트를 먼저 친숙하게 여기게 할 수 있을 것이란 효과를 기대케 했다.

이날 이들은 모두 트로트 장르에 대한 애정과 이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새롭게 가지게 된 시각을 주창했다. 그러던 중,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이 있었다. 일부 출연진이 각각 “우리민족의 한이 서린 음악. 민초들이 가장 괴로워할 때 역사적으로 마음의 양식이 되고 바로 트로트란 가요다”,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한국인의 피 속에 있는 한과 흥이 있는 음악”이라며 트로트가 마치 유일한 우리 고유의 음악인 양 설파한 탓이었다. 이는 트로트의 유래에 대해 일제 강점 당시, 엔카로부터 흘러들어온 것이라는 등 일반적인 학계 의견이 분분한 사실을 연상시켰다.

▲엠넷 '트로트 엑스' 0회 '뽕의 부활'(사진=tvN 방송화면 캡처)

이를 꼬집어 우려를 갖고 엠넷 김기웅 국장에게 직접 물으니 “일부 출연진의 생각일 뿐, 제작진과 입장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이튿날 보도자료를 통해 엠넷 측은 ‘21일 첫방 앞두고 트로트 스페셜 방송 긴급 편성’이라는 제목으로 “이에 트로트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스페셜 프로그램 ‘뽕의 부활’을 긴급 편성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대외적 비판을 염려한 현명하고 신속한 조처였다.

특별 편성프로그램 이외에, 아직 첫 회만이 전파를 탔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면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흥행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로 입증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프로그램의 특성 상, 참가자의 개성에 크게 기댈 수 밖에 없는 까닭에, 참가자의 빼어난 외모를 너무 칭송하고 성공을 확신하는 출연진의 태도는 스타성에 기대려는 기존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단점을 고스란히 보여 아쉬움을 샀다.

개봉 전부터 배치된 면면과 드러난 양태에서 느껴진 연출 의도는 곧 지혜로 증명될 셈이다. 이는 트로트가 안고 살아온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소수적 음악 장르를 살리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프로그램 취지와 시너지 효과를 내 원천적 힘을 실리게 하기 때문이다.

트로트 인생 30년을 넘긴 설운도가 밝힌 “프로그램을 기획해준 제작진에 너무 고맙다. 트로트 장르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기회라고 생각한다”라는 말과 “데뷔 당시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였던 신진 트로트 가수들은 이제 다 어디가고 저만 남았다. 트로트 가수로서 설 수 있는 무대는 주로 지역에 한정돼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제 후배들이 많이 나와주길 기대하고 있다”는 홍진영의 말이 유난히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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