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투자 집행률 67%, 누구의 책임인가- 한지운 산업부장

입력 2013-11-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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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만난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이야기 도중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투자 압박이 생각보다 커서 투자를 더 할 곳은 없는지 각 부문별로 계획을 다시 수립하고 있는데 사실 걱정이 많습니다. 투자 계획을 보여주기 식으로 짜면 안되지만 마냥 버틸 수도 없고….”

어느덧 11월, 한해를 마무리하는 때가 왔다. 연말 정기인사와 내년 경영전략과 목표 등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올해 투자 목표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입을 열었다. 애초에 무리한 계획이었다는 것. 게다가 시장 환경도 좋지 못해 투자를 목표대로 집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만의 문제일까. 오너 리스크를 겪고 있는 또 다른 기업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투자든 뭐든 굵직굵직한 경영사안은 총수가 결정을 해줘야 하는데, 총수가 없다보니 연내 진행해야 하는 사업들이 상당 부분 중단되고 있다는 것. 이 같은 상황에서 목전으로 다가온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은 아직 손도 못대고 있다는 실토도 이어졌다.

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30대 그룹의 연초 투자 계획 대비 집행률이 67%에 불과한 것으로 최근 집계됐다. 투자 계획은 총 148조8000억원이었지만 9월 말까지 투자 집행률은 3분의 2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재계의 투자 목표는 지난해처럼 달성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재계는 4분기에 투자가 집중될 것이라고 애써 말했지만 현실성은 그리 없어 보인다. 실제로 국내 재계를 이끌어가는 10대 그룹 중 상당수가 투자 집행률 70%를 넘기지 못한 실정이다. 이들의 투자액은 30대 그룹 총 투자 규모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30대 그룹은 지난 8월 산업통상자원부에 올 투자액을 연초 대비 4% 증액한 155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초 발표한 투자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목표 제시는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사실 올해 재계는 투자 목표를 언급하는 것을 놓고 예년과 달리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왔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원하는 기대치와 경영현실에 대한 간극을 어느 수준으로 맞춰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자 달성률이 화두가 되면서 부풀려진 목표를 언급하기도 어려워졌다.

투자라는 게 공격적으로 할 때도 있겠지만, 수비적으로 해야 할 때도 있다. 밀어붙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인 불황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현금 보유액 등 충분한 여유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계열사라는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물론 시장 수요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상당수 국내 업체는 지난 몇 년간 주요 사업 부문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고 이제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태양광과 같은 미래를 위한 신성장동력 아이템의 경우 유럽경기침체로 수요는 줄고 각국 정부의 지원 정책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중국 업체의 가격 파괴 전략까지 이어져 이익은 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주력 분야의 투자는 마무리됐고, 미래 분야의 투자는 탄력적으로 시점을 조정해야 하는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투자와 같은 주요 경영계획은 정치적 논리가 아닌 생존의 논리로 짜야 한다. 기업의 경영환경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기업을 위협하는 거시적, 미시적 변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잘못된 투자는 대규모 손실로 이어져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다. 이는 국가 경제와 고용을 위협할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기업과 국가 경제는 단 방향이 아닌 하나의 순환 고리로 묶여 있는 관계다. 기업이 먼저 투자를 해야 경기가 살아난다는 단 방향 논리만 대입해 압박한다면, 과연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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