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은행나무 단풍잎- 안영희 중앙대 교수

입력 2013-11-0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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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면서 낙엽수들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붉게 변한 단풍나무 잎의 단풍도 아름답지만 역시 가을단풍의 백미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일 것이다. 그동안 부지런히 동화양분을 만드느라 그 역할을 다했던 초록 잎의 노화가 단풍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태양으로부터의 빛에너지를 고정하여 광합성을 수행했던 엽록소 색소는 기온이 뚝 떨어지고 해의 길이가 짧아지면 효소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잎의 세포 안에 있던 여러 다른 색소체들이 발현되어 붉은색, 갈색, 노란색 등의 다양한 단풍이 들게 된다. 붉은색 단풍은 많은 색소들 가운데 특별히 안토시아닌 색소에 의해 나타나며 은행나무와 같이 노란 단풍은 주로 카로티노이드에 의해 나타난다.

은행나무는 수형이 아름답고 여름철 녹음도 좋은 나무이지만 특히 단풍이 아름다운 나무이다. 잡티도 하나 없이 깨끗하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가을을 상징한다. 은행나무 잎에는 방부제 성분이 있어 책에 끼워두면 책장에 좀이 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스산한 찬바람이 불어 길가에 식재된 은행나무의 노란 잎이 우수수 떨어지면 겨울이 지척에 다가왔음을 느끼게 된다.

은행나무는 단순히 단풍이 아름다운 나무만은 아니다. 은행나무는 고생대 말엽에 지구에 출현하여 수차례의 빙하기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은 화석식물 중의 하나이다. 오직 1과 1속 1종뿐으로 분류되는 은행나무는 근연의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식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은행나무의 생명력이 뛰어나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으나 경기도 양평군의 용문사 어귀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무려 1400여살로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는 원래 중국 절강성 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매우 오래전에 건너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일부 불상의 재질이 은행나무로 밝혀진 것은 이미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행나무 목재는 엷은 담황색을 띠어 색깔이 아름답고 재질이 치밀하며 가공하기 용이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예전부터 고급 가구를 제작하거나 장기판이나 바둑판, 경판 등을 제작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사람 손을 많이 타는 소반이나 다식판을 비롯한 생활용구는 은행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쳤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굴러다니는 은행나무 잎도 뇌혈관 혈전 제거제와 같은 귀중한 의약품의 원료로 이용되고 있다.

요새 길을 걷다보면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열매가 발에 밟혀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은행나무 열매는 속껍질이 은(銀)처럼 희고 모양이 살구(杏)와 비슷하다 하여 은행(銀杏)이라 한다. 식용부위인 종자의 배유에는 탄수화물 34.5%, 단백질 4.7%, 지방 1.7%를 비롯하여 몸에 좋은 카로틴, 비타민 C 등이 비교적 높게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예전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중요한 구황식량원으로 여겼었다. 또 백과(白果)라 하여 호흡기질환에 생약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먹거리로 넘쳐나는 근자에는 열매가 사람 피부에 두드러기를 일으키고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하여 천덕꾸러기로 전락되고 말았다.

은행나무는 암꽃만 피는 암그루와 수꽃만 피는 수그루가 따로 있는 암수딴그루의 식물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봐야 열매가 열린다고 하였다. 열매의 가치를 잃어버린 오늘날의 은행나무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그루만이 선택적으로 심겨지고 있다. 지극히 사람만의 입장을 생각한 이기적인 행위라고 생각된다.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하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남녀 성비의 불균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남녀 성비 불균형의 원인에는 발전된 의학과 최신의 의료장비를 활용한 인위적인 조절도 한몫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사람이 인공적으로 관여하면 자연의 균형을 잃고 기형적인 불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 먼 미래의 안정된 생태계를 위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가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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