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사라진 대화록, 섣부른 음모론을 경계한다

입력 2013-07-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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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 대화록을 찾지 못했다. 당시 청와대의 업무처리 관행과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없을 리가 없고, 이렇게 힘들게 찾아야 할 이유도 없다. 사실 대통령에 대한 보고를 포함해 모든 업무처리를 원칙적으로 이지원, 즉 전자문서결재시스템으로 했다. 한번 올라가면 누구도 흔적 없이 지우거나 수정할 수도 없었다. 그때 기분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툭’ 치면 ‘탁’ 나와야 한다.

아무튼 걱정이다. 국정원 보관본도 있고 음원파일도 있다 하니 복원이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사라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대화록의 내용은 물론 관리 책임과 관련하여서도 큰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화록이 사라졌다는 사실만큼 답답한 일이 있다. 정치권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고 있는 음모론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 고의적으로 폐기했다느니, 이명박 정부나 국정원이 나름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뭘 어떻게 했다느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들이다.

한마디로 말이 되지 않는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물 관리를 위한 법을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그 법에 따라 스스로를 구속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해 8백만 건이 넘는 기록을 남겼다. 유·불리를 따져 문건을 폐기할 사람이었다면 그런 법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국정원과 북한도 가지고 있는 문건이다. 혼자 폐기한다고 해서 폐기되는 일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이를 폐기하겠나.

이명박 정부나 국정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정원 보관본의 내용을 자신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공하여 흘릴 수는 있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를 어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접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큰 정치적 위험이 따른다. 더욱이 이 경우 역시 남북이 같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부담이 된다. 역시 손을 댈 이유가 없다.

이런 빤한 사실에도 정치권은 음모론으로 서로를 몰아붙이고 있다.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쪽이 오래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폐기했다는 정보가 있었다고 말하면, 다른 한쪽은 자신들이 손을 대어 놓고는 일부러 그런 소문을 낸다고 공격하는 수준이다. ‘팩트’라고 내어 놓는 것도 한심한 내용들이다. 당시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재생산한 것이 어쩌고, 이명박 정부 시절 이지원 사본이 보관된 서고의 봉인이 뜯긴 것이 어쩌고 하는 정도이다. 맞지 않는 조각들을 억지로 가져다 붙이고 있다.

이번 일의 원인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첫째는 문서 또는 기록물의 생산과 관리, 그리고 검색체계의 문제이다.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제대로 점검하고 제대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둘째는 개인적 일탈의 가능성이다. 정권이나 기관 차원의 개입이 아니라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대로 조사해서 찾아내면 되고, 앞으로 그런 일이 벌이지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셋째, 인간적 실수이다. 이런저런 과정에서 실수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이지원에 문서 자체를 올리지 않는 실수를 여러 번 할 뻔했다. 외부기관에서 중요한 사안을 종이문서로 보고해 왔을 때, 그것도 보고라인을 거쳐 오지 않고 바로 찾아 와 대통령에게 은밀히 보고해 달라고 할 때 잘 일어나는 일이다. 종이문서로 보고한 다음, 이를 전자문서로 정리해 다시 이지원에 올려야 하는데 그걸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 경우 이 문건은 기록물에서 빠져 버리게 된다. 나중에 기억이 나 뒤늦게 처리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이번 일이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 관계자들이 증언하는 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자리에서의 이야기는 기록물을 생산·보관하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인간적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최소화하는 방안들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국가의 기록을 관리하는 것은 중대한 사안이다. 이 중대한 사안을 다시 정쟁의 제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댓글 정국에 북방한계선(NLL) 정국, 그리고 다시 막말 정국. 국민도 이제 지쳤다. 또 다시 정쟁을 위한 정쟁, 섣부른 음모론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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