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중 칼럼] 대한민국의 시계도 거꾸로 간다

입력 2013-06-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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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논설실장

미국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는 여든 살의 노인으로 태어난 후 점점 젊어지다가 결국 태아 상태가 되어 삶을 마감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0년대 쓴 동명의 단편 소설을 데이빗 핀처 감독이 지난 2009년 영화화했다. 핀처 감독은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상실감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감 등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영화 전편에 걸쳐 담담하게 그려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줬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로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라는 말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지만,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살아야 했기에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의 시계는 인위적으로 되돌려짐으로써 감동도 없고 장마철에 짜증만 돋운다.

정치권 시간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 당시로 돌아갔다. 국가정보원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탓이다.

정상회담 회의록은 대통령 기록물이어서 국정원의 공개는 국기를 흔들었다고 야당 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만큼 그 후폭풍은 감히 예상키 어렵다.

당초에는 노 전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의 포기 발언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쟁점이었지만 전문이 공개되면서 내용의 정당성 외에 국가원수로서의 자격과 품위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절차적 문제와 공작설, 사전 유포설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덮을 수는 없다고 본다.

정치적 반대편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적에게 동조한 것은 누가 뭐래도 이적 행위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백성들을 주검으로 내몬 당사자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은 영토보존, 국가의 계속성 및 헌법 수호 등 대통령의 책무를 망각했다. 더욱이 방북 성과를 얻기 위해 김 전 위원장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에는 국가원수로서의 존엄은 찾아볼 수도 없다. 동시에 국민적 자존감도 땅에 처박혔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안다. 이번에도 여야 간 상호 비난 속에 별다른 결론 없이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점을.

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고 당황했다면, 황당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도 있다.

우리금융그룹의 인사는 박근혜 정부 파행인사의 결정판이다.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이사회 의장에 이용만 사외이사와 이용근 사외이사를 각각 선임한 것. 과거 우리금융 회장들이 지주와 은행의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면서 ‘제왕적 권력’을 휘둘렀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라지만, 이용만과 이용근 두 의장의 등장으로 설득력이 없어졌다.

강력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이순우 은행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된 이유를 그때서야 알았다. 두 이 의장이 뒤에서 상왕 노릇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현 정부 들어 모피아의 금융권 장악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두 이 의장의 상징성은 남다르다. 이들은 수십년간 한국 금융계를 좌지우지한 재무부 이재국 출신으로 원조 모피아다.

이용만 의장은 1933년생으로 80세이고, 이용근 의장은 1941년생으로 72세다. 이용만 의장은 노태우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이용근 의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지냈다. 물리적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세상의 질서는 너무나 많이 변했다.

혹시라도 두 이 의장이 오랜 시간의 경륜을 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 후배들에게 자리를 부탁했다면 너무 염치가 없다. 선배들을 위해 모피아 후배들이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 줬다면 전관예우도 이런 전관예우는 없다.

우리금융과 같은 거대한 자본을 매각하는 작업을 민간 출신에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시대착오적이다. 하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왕조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실로 방자한 말을 소신인 양 거침없이 말하는 세력들 아닌가.

‘보이지 않는 손’(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이 더 이상 금융권 인사를 농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모피아 출신들의 관치로 한국의 금융산업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터다. 인사를 바로잡는 건 대통령의 몫이다.

역리(逆理)는 순리(順理)를 이기지 못한다. 시계는 제 방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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