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열전] 드라마의 눈, 촬영감독 서득원

입력 2012-11-29 07:22 수정 2013-04-1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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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제공
▲사진=SBS 제공
괴팍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TV을 통해 형상화된 카메라맨은 의례히 괴팍하거나 혹은 개성파다. 또한 촬영 현장을 오가면서 피부로 느낀 바도 적지 않건만 서득원(57) 촬영감독(이하 감독)은 편견을 단번에 뒤집었다. 자상한 아빠 혹은 인자한 선생님 같은 모습을 한 서 감독은 어투에서 또한 여유가 느껴진다. 치열한 촬영 현장에서 막 빠져나왔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나이 먹으면서 매사 몸과 마음가짐을 더 잘하게 되요. 촬영현장에서 모범이 될 수밖에 없고, 후배들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기보다 내가 후배들에게, 다른 파트 스태프들에게 맞추게 되더라고요. 나도 한 때는 괴팍했지(웃음).”

서득원 감독은 이미 대가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갖춘 촬영감독이다. 카메라를 잡고 현장을 누빈지 32년 째. 어느새 정년을 앞둔 그의 필모그라피는 화려하다. ‘여명의 눈동자’ ‘황제를 위하여’ ‘머나먼 쏭바강’ ‘모래시계’ ‘백야 3.98’ ‘태왕 사신기’ ‘대망’ ‘신의’까지…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히트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생한 작품일수록 기억에 남고 애정이 가지요. 미니시리즈도 많이 했지만 사극, 현대극만큼 고생스러운 작품이 없어요. 촬영 시작부터 종료시점까지 밤샘작업의 연속이에요. 많은 작품을 거치면서 양보하는 법을 배웠어요. 예전에는 내 영상의 각도, 내 그림의 가치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가 조금 양보함으로써 다른 분야가 돋보인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게 되요.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있을 뿐 그림에 대한 욕심은 버리게 되더군요.”

시종 ‘제대’라고 표현했던 정년퇴임 이후 서 감독은 개인 사무실을 차려서 다큐멘터리 작업에 몰두할 예정이다. 드라마 작업의 쉼표 없는 질주에 미뤄두었던 욕심이다. “예전에 다큐멘터리도 많이 찍었었는데…”라며 아련해진 눈빛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열정을 대변해준다. “소나무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들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줄 아세요?” 희끗해진 머리카락과 상반된 온기랄까. 서 감독에게는 지치지 않는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열악한 현장…버텨주기만 해도 고마운 후배”

후배 양성을 언급하자 서 감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바닥…생업까지 위협합니다”라며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쉰다.

“너무 안타까워요. 정말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이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학교 전공학과 뿐 아니라 각종 교육기관에서 기초를 배운 젊은 친구들이 일단 발은 들입니다. 10명 중에 1명 남을까 말까에요. 촬영 현장을 경험해보면 혀를 내두르고 도망갑니다. 버텨주는 후배가 있으면 그 자체로 고마워서 진짜 예쁩니다. 현장에서 실수 뿐 아니라 꾸벅꾸벅 졸고 있어도 예뻐요.”

업계를 호령하던 선배의 절실함이 한 마디 한 마디에 묻어난다. 한류 드라마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스타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요즘이다. 촬영 현장 중심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카메라맨들에 대한 처우가 어느 정도이기에 서 감독이 입에 침을 말려가며 개탄하는 것일까.

“한류요? 이대로라면 한류 지속 못합니다. 촬영 여건은 내가 젊었던 시절보다 10배 이상 열악해졌어요. 쪽 대본에 생방송 드라마를 찍어내는데 작품성이 어디있습니까. 직업의식이요? 방송사고 안내기에 급급해요. 3개월 씩 집에 못 들어가면서 버는 돈이 용돈 수준입니다. 말이 되는 현실이 아니죠. 그러다보니 방송국 공채로 들어와도 퇴사하거나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에요. 방송사 공채요? 수백대 일이에요. 하늘의 별따기인데도 그런 실정입니다. 하물며 프리랜서 카메라맨들은 어떻겠습니까?”

종종 방송계에서는 ‘열정을 담보로 한 착취’라는 비아냥이 오간다. 작업의 강도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해 나온 말이 카메라맨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구체적인 액수를 묻자 서 감독은 “일단 힘들어도 5년 차는 넘겨줘야 살만 합니다. 5년차 넘어가면서 연봉 3000~4000만원 수준이 겨우 되요. 그 이전에는 순차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용돈 벌이 정도라고 보면 되요. 물론 유독 잘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퍼스트나 포커스플로워같은 경우 억대 연봉 수준의 소득을 올리기도 해요. 이것 역시 7년 차 이후 이야기입니다.”

업계 실정을 이야기 할 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숨을 끌어 올리던 서 감독은 다시 작업 이야기로 돌아가자 금세 눈빛이 뜨거워진다.

“그래도 이 직업의 장점이라면 창작이죠. 창작물은 오롯이 내 것이잖아요. 영상은 사이즈의 예술입니다. 대상을 크고 작은 사이즈로 찍어서 완성했을 때의 만족감…그것 때문에 카메라를 잡는 거예요.”

업계의 메마른 현실과 다르게 아직도 카메라맨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젊은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서 감독은 정년퇴임 이후 대학에서 후배 양성에 힘쓸 예정이라고. 후배들을 양성해야 업계가 죽지 않는다는 그는 어떤 형태로든 후배 양성에 기여하겠다고 했다.

“학교에서 전공을 하는 것도 좋고, 교육 기관에서 기초 과정을 이수하는 것도 좋습니다. 두 가지가 모두 어렵다면 일단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세요. 바닥부터 시작해서 감각을 익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촬영 현장에는 계약직 혹은 일용직 카메라 어시스트들이 있어요. 뚫고 들어오세요.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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