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김대승 감독 "'후궁' 찍고 감독 그만 두려 했다"

입력 2012-07-0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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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고이란 기자
- ‘절치부심’의 심정? ‘후궁’을 연출할 당시 절박했나.

▲ 그랬다. 2005년 ‘혈의 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6년 ‘가을로’ 그리고 2007년 ‘연인’을 만들었다. 알고 있는 데로 아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가을로의 참패, 연인은 극장 개봉도 못했다. ‘후궁’ 제안을 받고 고민했다. 이것마저 안 되면 연달아 세 작품을 말아 먹은 감독이 된다. 그런 감독을 대체 누가 써주겠나. 나 스스로도 더 이상 그런 감독은 영화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후궁’이 내겐 마지막 작품이었다. 마지막 작품을 앞둔 감독의 심정은 둘 중에 하나다. 머리를 써서 어떻게 관객들의 트랜드를 맞춰 흥행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 살아나느냐, 또 하나는 흥행이 덜 되더라도 마지막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해서 평가를 받고 장렬히 전사하는 것뿐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트랜드를 맞추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맞춰봤는데 성적이 안 좋으면 그 노력도 물거품이 되는 거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담아내는 게 마지막 작품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런 각오가 세워지니 앞서 설명한 좀 위험스런 요소들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좀 커졌다. 물론 예정된 다음 작품은 없다. 다시 한 번 내 위험한 도전을 함께 해준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난 한 게 아무것도 없다.

- 이번 영화로만 보자면 김대승은 참 인복이 많은 감독이다.

▲ 진짜다. 그 인복 때문에 내가 다시 살아났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원래 극중 왕의 침전 벽면에 멋들어진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화면으로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더라. 미술팀에서 힘들게 작업했는데 내가 지우자고 결정해서 통보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다음 날 현장에 오니 미술 감독이 싹 지워버린 거다. 너무 놀랐다. 핸드폰을 보니깐 미술 감독이 문자를 했더라. ‘고민하지 마시고 그냥 찍으십시오.’ 내 고민을 주변에서 먼저 알고 내 뜻을 존중해 주신 것 아닌가. 날 그만큼 편하게 해주려 많은 스태프들이 노력했다. 난 모든 스태프들이 만들어 준 밥상에 숟가락만 하나 더 했을 뿐이다. 하하하

-스태프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인가.

▲ 스태프들을 믿지 못하면 이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특히 이번 ‘후궁’은 더욱 그랬다. 함께 한 분들 모두가 ‘능력’면에서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들이다. 서로가 이른바 내공이 만만치 않아서 말을 안 해도 척척 들어맞는 부분이 많았다. 나로선 너무 재미있고 창의적인 작업이었다.

▲사진 = 고이란 기자
- 작업 당시를 떠올리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진짜 즐거웠던 것 같다.

▲ 내 고민을 그 수많은 스태프들이 나눠 짊어주었다. 어떻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나.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미술감독은 촬영감독이 조명을 어떻게 쓸지 미리 알고 미술 세팅을 한다. 반대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 장면에서 나는 캐릭터의 심리에만 초점을 맞춘 연출을 하면 된다. 또 배우는 그에 맞는 연기에만 집중한다. 각각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내 의도를 너무 정확하게 파악하고 일사천리로 움직여 줬다. 너무 즐거웠다. 재미도 있었다.

- ‘후궁’은 색을 뺀 광기의 스토리라고 보면 될까. 그런 점에서 중국 영화 ‘황후화’가 생각나더라.

▲ 반대의 개념으로 보자면 조금은 통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욕망에 대한 얘기를 한국과 중국의 정서에 맞게 풀어낸 점 정도랄까. 다만 ‘황후화’는 색의 향연이라 할 만큼 화려하다. ‘후궁’에선 볼 수 없는 느낌이다. 반대로 ‘후궁’에는 ‘황후화’에선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굳이 흠을 잡아보자면 ‘밀궁’이란 공간의 불필요성이랄까. 너무 과장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충분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궁 자체가 공포인데 무슨 공포가 더 필요할까란 생각을 분명히 해봤다. 그런데 그렇게 갔다면 궁의 일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야 했다. 결국 밀궁은 필요했다. 스토리의 전개 상. 쉽게 말해 이런 점이다. 화연에게 ‘궁지에 몰리면 이곳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하나의 개념을 심어줘야 했다. 화연이 ‘내가 떨어지면 저 곳으로 가겠구나’란 일종의 공포감 말이다. 바꿔 말하면 공간을 창조해 인물의 디테일을 살리고 싶었다. 밀궁 장면을 자세히 봐라. 철장이 없다. 바닥에 줄만 그어 두었다. 그런데도 갇힌 궁녀들이 도망을 가지 못한다. 얼마나 무서우면 그렇겠나. 밀궁이란 공간의 공포를 통해 영화 전체의 공포감이 확장되기를 바랐다. 궁이란 공간 자체가 공포로 살아나서 움직이고, 그 동력이 밀궁이기를 바란 것이다.

- ‘후궁’을 보면 궁 밖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전부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 정확히 말하면 궁 외경은 딱 세 번 나온다. 뭐 아주 잠깐씩 나올 뿐이다. 영화 전체를 통과하는 궁의 이미지가 기존의 궁과는 조금 다르다. 때문에 외경이 아닌 내부에 집중했다. 만약 외경에도 집중한다면 제작비는 그 만큼 상승하지 않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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