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세상에 공짜는 없다

입력 2012-06-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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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대성에너지 사장

고려사가 전하고 있는 고려말 토지제도의 문란상이다.

‘요즘들어 권문세족들이 남의 토지를 겸병함이 매우 심하다. 권력과 매를 앞세워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그 규모가 큰 경우 산천을 경계삼는 데 비해 가난한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도 없는 형편이다. 소작료가 적은 경우 50%, 많으면 7~8할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나라가 제대로 유지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고려말의 신진사대부들은 농지개혁에 나서게 된다. 정도전을 비롯한 개혁파들이 제시한 안은 토지소유권은 국가가 가지되 경작권을 국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당시는 토지가 모든 생산 활동의 기초가 되던 시절이었다. 농민들을 소작에서 해방시켜 스스로 자기토지를 경작하는 자작농을 만듦으로서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병역자원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제개혁에 관한 이런 이상적인 구상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후퇴와 굴절을 겪게 된다. 무려 2년이란 긴 시간이 지난 뒤 마련된 최종 안은 그야말로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모양이 되고 말았다.

광범위한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세력들도 정작 자기 토지를 내놓아야하는 상황에서는 갖은 구실과 변명을 늘어놓으며 뒷다리를 잡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과정에서 당초의 취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신문에 처음 발표된 내용을 보고 정말 좋은 안이라고 환호했는데 나중에 확정된 것을 보니 알맹이는 다 빠지고 용두사미가 되어 있는 경우이다.

대부분의 수혜자들은 좋은 안이 만들어지기 만을 손 놓고 기다리고 있는 사이 손해 보는 집단은 집요하게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관료나 정치권을 찾아다니며 설득에 성공한 결과다.

시간을 끌면서 집요한 논리와 로비로 자기이익을 챙기는 집단도 나쁘지만, 제도개선의 혜택에 무임승차할 생각만 품고 뒷짐지고 구경하고 있는 것도 결코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무임승차는 당사자에게는 짜릇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은 차치하더라도 지극히 제한된 분야에서 일시적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모든 국민이 영구히 어딘가에 무임승차할 수 있는 상황이란 있을 수가 없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임금님이 석학들을 모아놓고 후대 사람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할 내용들을 모아 책으로 펴내라고 했다. 한질의 책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백성들이 어느 세월에 이렇게 한질이나 되는 책을 읽겠는가? 한권으로 줄여보라.” 그 후 한권이 줄어 한 페이지가 되고 마지막에는 단 한줄로 줄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다.

누군가가 땀을 흘리지 않았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지는 법은 있을 수 없다. 내가 노력한 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이, 우리 세대의 헌신이 아니면 이전 세대가 축적해 놓은 것을 까먹거나 다음 세대에 짐으로 넘겨주게 된다.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개혁이 진행되고 있으나 그 진도는 느리기만 하다. 기득권층의 저항도 저항이려니와 또 다른 이유는 혜택을 보게 되는 다수가 감이 떨어지기 만을 기다리며 나무아래에서 입만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을 내놓지 않으려는 계층에 맞서 이해관계자, 시민단체, 소비자 그리고 국민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제도개선을 요청하고 과정을 재촉하면서 결과가 나오기를 지켜봐야 한다.

SNS의 발달로 소비자나 일반 국민들도 과거에 비해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기업이나 국가의 그것에 비하면 양이나 질에서 비교할 수 조차 없다.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는 길은 오직 관심과 참여다.

좋은 제도를 탄생시켜 좋은 사회를 만들려면 이해당사자 모두가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혼자 나라걱정을 다하는 듯 하는 사람일 수록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자기 시간과 돈을 바치는 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가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국민이 많은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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