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변한다]이주노동자 가정 수십만인데 법적보호 못 받아 ‘고립된 성’

입력 2012-05-10 09:05 수정 2012-05-1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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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정의 달’ 5월이지만 사회적인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정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 가정이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장기 거주하는 전체 외국인 수는 126만5006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54만 명이 이주노동자다. 사회적으로 다문화 지원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 우리 옆에 있지만 우리나라 법에는 없는 가정 = 이주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분리돼 살아가지 않는다. 최소한 2~3년에서 길게는 8년까지도 한국에서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과거 컨테이너 등에 기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방을 구해서 생활한다. 엄연히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가정은 분명히 수십만 가구가 존재하지만 법적으로 ‘없는 가정’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법상 이들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한국에 방문하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과거 아무 문제 없이 4년 10개월을 지낸 뒤 재입국하는 '검증된 노동자'에게도 가족을 동반하는 것이 제한된다.

국제사회에서는 지난 2003년부터 발효된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한 국제규약’에 따라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권리를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조약에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공통적 인식을 마냥 의식하지 않기도 어려운 부분이다.

관련 단체와 등에서는 이주민 사회통합 정책의 범위를 지금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대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은 “(현재 상황이 유지된다면) 한국이 가족을 해체하는 국가로 낙인찍힐 수 있다”며 “OECD국가의 지위라던지 개발도상국을 돕는 선도적 국가의 역할이라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제도 밖에서 방치되는 아이들 =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가정 자녀인 A군(13·남)은 한국의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A군의 국적은 방글라데시이지만 방글라데시 말을 하지 못한다.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볼 때면 한국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한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이 밉다”고도 했다. 언젠가 A군은 방글라데시로 쫓겨 갈지도 모른다. A군은 “나를 놀리는 한국 친구들이 밉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주민 노동자 가정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자녀 문제다. 이주노동자 가정 자녀는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동시에 정체성에 혼란도 겪으며 자란다. 이 아이들은 한국 문화를 접하며 자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부모의 사정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 남기도 한다. 약 10년 후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성인이 된다.

학계 등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국내에서 머무는 동안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에 재학할 수 있도록 교육권을 보장하는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학교장 재량에 따라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돼 있긴 하지만 학교측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 혈세 쓰지 않고도 도울 수 있어 = 이주노동자의 사회통합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한국인이 내는 세금으로 외국인에게 지원해 줄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다. 하지만 마냥 인권을 방치할 수 없다면 제도적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살펴볼 필요는 있다.

IOM이민정책연구원 정기선 연구교육실장은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서 일하면 이득을 얻는 쪽에서 사회적 부담을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대만이나 싱가포르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과정에서 사업주가 임금 절감 등의 이득을 봤다면 이 이득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내는 각종 벌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안대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은 “우리나라 한해 다문화정책 예산이 약 380억인데 외국인 근로자가 내는 벌금도 380억 수준”이라며 “국고 재정으로 들어가는 이 벌금만큼이라도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쓴다면 이들의 사회통합을 상당히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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