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 사이

입력 2012-04-02 10:15 수정 2012-04-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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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산업부장

2012년 4월, 대한민국의 화두는 재벌개혁이다.

지난달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갑작스러운 퇴임을 발표하면서 재벌 때문에 한국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추진하려던 동반성장정책이 실패한 것은 재벌의 무지막지한 몽니 때문이라며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해체하라고도 했다.

책임전가이며 정치 참여를 위한 자락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반재벌 정서는 이처럼 심각하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 조차 재벌개혁을 총선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정신에서 찾고 있다.

헌법 제 119조 2항의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그러나 1항의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 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자유시장경제정신을 간과하고 있다.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재벌개혁과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2항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항을 위해 1항의 정신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2항 보다 1항이 우선이라는 법 원칙에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재벌해체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수권을 준비한다는 민주당이 소수파이지만, 급진적인 진보당에 끌려다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순환출자금지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등으로 재벌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 진보당은 재벌그룹을 해체하자고 한다. 30대 재벌그룹을 3000개로 쪼개겠다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했다.

그룹별 해체 정책도 내놓았다. 금산분리 정책을 강화해 삼성그룹을 전자와 금융의 2대 기업군으로 분리하겠다고 한다. 또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켜 현대중공업·한화그룹을 해체하고, 지주회사 설립 요건을 강화해 SK·LG·두산그룹을 찢어놓겠다는 식이다. 또 롯데와 한진그룹 등이 업무와 무관한 계열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면서 ‘재벌세’를 신설하면 분리할 수 있다고 내세운다.

진보당이 총선을 통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될 경우 이같은 주장은 더욱 힘을 받을 게 뻔하다. 민주당이 연말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진보당과의 야당 단일후보라는 명분 축적을 위해 연합전선을 유지하고, 진보당은 지분에 따른 몫을 요구할 경우 재벌해체 정책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진보당이 내세우는 재벌해체는 자본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한국 대표기업들이 오너와 그룹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경우 글로벌 투기 자본에 의한 적대적 M&A 시도에 어떻게 대응할 지, 과도한 경영간섭은 어떻게 막을 것인 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도 걱정이다. 그냥 해체하고 보자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재벌그룹이 해체되면 중소기업들이 그 자리를 메우지 않겠느냐지만, 그렇다면 어리석거나 무지한 거다. 재벌그룹이 없으면 강한 중소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런 경우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거대 다국적기업이 대신할 뿐이다.

KT와 포스코 처럼 국민기업화 하면 되지 않느냐지만, KT와 포스코는 국민기업이 아니다. 아직도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주인없는 회사일 뿐이다. 기업가정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단기 수익에 급급한 외국자본들이 배당이라는 단물만 빼갈 여지가 그만큼 많다.

재벌개혁으로 더 많은 고용을 하고 경제양극화도 해소될 것이라지만, 대기업의 하향평준화로는 글로벌기업과의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된다.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참는다는 심정에서 재벌을 해체하면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면 정말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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