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사람은…]쓰러진 박선영 "탈북자 살려내라" 가슴에 불 지폈다

입력 2012-03-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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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북송저지 변화 끌어내 행복…11일 단식끝 실신, 악플엔 씁쓸"

▲사진=연합뉴스
자국이 아닌 타국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우리 일이 아니다”라는 무관심 탓이다. 그러나 한민족인 북한의 인권 문제, 이것까지 남의 일로 치부하기엔 너무 잔인하다. 행여‘보수’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북한 인권 문제를 애써 외면해온 게 정치권의 현주소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탈북자가 북송되면 연좌제 처벌을 하는 북한에서 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몇몇 보수 시민사회단체들은 시위를 통해 탈북자의 강제북송 중단을 중국 정부에 촉구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치인들도 침묵했다. 4·11 총선에만 함몰돼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까 하는 우려에서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덜했는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사건이 벌어졌다. 탈북자 강제 북송을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던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단식 11일 만인 지난 2일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것이다. 그제서야 언론이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고 곧 세계가 주목하게 되는,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에 일대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이제는 탈북자 강제북송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들리고 있고, 미국까지 행동에 나섰다. 40kg의 왜소한 그가 세계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쯤 되니 북한과 가까운 중국 정부가 받는 압박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지만 탈북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생겼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성과다.

본지 기자는 지난 10일 서울대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안 된 박 의원을 만났다.

4년간의 의정활동 기간 내내 북한인권 문제에 온힘을 쏟아온 박 의원은 오랜 단식으로 백혈구 수치가 현저히 낮아져 한 때 음식물 섭취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다행히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박 의원은 자신의 희생으로 탈북자 문제에 변화가 일고 있는 데 대해 더 없이 행복해했다. 그는 “너무나 감사했다. 인권에 대해선 젊은 사람들도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고 걱정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기뻐한 것과 달리 사실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았다. 박 의원의 실신 소식이 전해진 날 인터넷 상에선 온갖 비난의 글이 쏟아졌다. “실신쇼”라는 주장에서부터 “공천탈락 소식에 졸도한 것”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사진을 보니 립스틱이랑 마스카라 화장을 하셨네요”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사진=연합뉴스
박 의원은 이런 조롱이 쏟아진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악플들이 달린 사실을 늦게 알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분노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언론을 통해 실신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코 높인 것 같다”는 인터넷 리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코는 어느 병원에서 수술했어요? 수술비 몇 천 만원 했을 거 같은데 그걸로 탈북자들 도와주세요”라는 비아냥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제가 말랐으니까 코 수술을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때 ‘아, 내 코가 그렇게 예쁜가? 내 코가 성형했다고 볼 정도로 그렇게 예쁜가’ 이렇게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래도 사람인데, 조금의 서운함 조차 없었을까. 그는 “서운함보다는 우리 사회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바라보기보다는 뭔가 자신이 끼고 있는 색안경에 맞춰서 매사를 보는, 뒤틀린 모습이 많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반듯하고 정직하게 보기에는 갈 길이 참 멀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 정부와 중국 측에 아직까지도 할 말이 많았다. 박 의원은 “지난 5일엔 이달곤 청와대 정무수석이 찾아와 ‘지금 대통령도 엄청 노력하고 계시다. 국제연대도 할 것이라는 등의 얘기를 하고 갔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정부가 반짝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면서 “정말 실효적이고 실질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정부가 20년 동안 ‘조용한 외교’라는 미명하에 너무나 많은 북한 주민들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었다”고도 했다.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이 문제에 끝장을 봐야 한다”고 할 땐 절박감마저 느껴졌다.

그는 중국 정부를 향해서도 “중국이 21세기 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지려면 경제보다도 인권을 개선하고 인권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게 훨씬 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탈북자 문제를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것은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에서 보도를 안 해주면 국민들은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알 길이 없다. 이번에 많은 언론들이 협조해 줘서 저희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달라”고 언론의 관심도 호소했다.

그는 이날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곧바로 스위스 제네바로 떠났다. 19일 열리는 유엔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ICC)에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퇴원 뒤 요 며칠 사이에도 다시 시위에 참여하고 탈북자들의 북송 소식을 계속해서 전했다.

건강 상태가 걱정됐지만 그는 “내 소임을 다할 뿐”이라며 출국을 강행했다. 그는 “지금도 속속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또 있겠느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탈북자에게 있어 박 의원은 한줄기 빛이었다.

◇박선영 의원이 걸어온 길

박선영 의원은 이화여대 법학과, 서울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1989년 MBC보도국 기자로 활동하다 서울대와 가톨릭대 동국대 강단에 섰었다. 2006년부터 2년 간 국민권익위 위원도 지냈다. 2009년 유럽헌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선 2008년 자유선진당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진출했다. 4년 간의 의정활동 내내 그는 탈북자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최근 단식 시위를 벌이던 중 먼발치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박 의원을 응원하고 발걸음을 돌리곤 했던 그의 배우자는 민일영 대법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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