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그들은 누구인가]⑬전문인력 ‘흔들리는 정체성’

입력 2011-11-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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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스페셜리스트…환상이었다”

올해 A은행 입사 5년차인 최아무개 대리(30)는 행원이 되기 전 글을 쓰는 일을 했다. 주간지나 계간지에 간간이 실리는 원고료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소설가로의 등단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러다 A은행의 입시전형이 떴고 지원했다. 아직 20대인 시절에 “은행만큼 안정적이고 보수도 높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직업은 없다”는 부모님의 성화를 못 이겨서다.

그의 색다른 이력은 은행에 최종 입사하는데 도움이 됐다. 면접관은 “글을 써왔는데 회사의 마케팅이나 홍보쪽에서 일해 볼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까지 글을 통해 쌓은 경험과 인맥으로 마케팅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환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입사 1~2년까지 지점의 기업·개인수신부에서 일하며 출납을 결산하고 대차대조표를 맞췄다. 밤 10시~11시쯤 퇴근해 집에 오면은 새벽달이 어슴프레 비췄다.

최근 은행의 출신 성분이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상고출신이 대부분이었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최종 학력은 대학으로 올라갔다. 전공 역시 미술·발레 등 예체능, 인문계, 공대 등 다채로워졌다.

경력직이 많아진 것도 특징이다. A은행의 2010년도 신입행원 200여명 중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 온 비중은 12%나 됐다. 그만큼 ‘경력형 신입’이 새로운 경향이 됐다는 의미이다.

은행이 다양한 직군을 새로 뽑는 데는 은행의 사업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이 첨단화 됐다는 미명도 있지만 같은 크기의 파이를 두고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 때문에 다양한 인맥을 경험한 인재를 선호하게 된다.

B은행의 인사 담당자는 “솔직히 싸이월드 등 소셜네트워크 활동이 활발하고 지인이 많은 신입행원에게 영업을 시키면 성과가 더 좋다”고 말했다.

국내 유수의 기획홍보회사에서 일하다 C은행에 온 입사 2년차인 김 아무개 계장(34)은 이런 일을 그대로 경험했다. 지난해 은행권에는 주택청약통장 열풍이 불었다. 대부분의 은행이 지점별로 ‘행원 한 명당 청약통장 몇 개 유치’라는 식의 기록을 해가며 영업에 적극 나섰다. 이 때 김씨는 홍보회사에서 일하다 온 덕(?)을 톡톡히 봤다.

김씨는 “면접 당시 휴대폰에 1000개가 넘는 번호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했는데 상급자가 그 사람들한테 다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문 금융인을 꿈꾸고 은행에 왔는데 아직 은행 사업 구조는 사람을 유치해 돈을 버는 단순한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며 “아직 은행원은 돈만 만지는 이미지가 있어서 금융인과 은행원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은행의 전문직 채용사례는 늘고 있다. 신한은행은 고액 자산가를 상대하는 프라이빗뱅커(PB) 중 국세청 출신을 고용했다. 은행 업무에 전문 세무상담을 결합했다. 이외에도 변리사부터 변호사까지 다양한 전문직이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PB센터에서 근무한다. 업무도 은행에 들어오기 이전에 하던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 역시 21세기 은행원의 하나로 봐야할지, 은행원의 정의가 달라지고 있다고 판단해야 할지, 단지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만 하는 특수한 서비스에 불과한 것인지는 시간이 좀 더 흘러봐야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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