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금융포퓰리즘 유감

입력 2011-10-21 11:00 수정 2011-10-21 14:38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강혁 부국장 겸 금융부장

세상이 참 묘하다.

정체성에 혼돈이 올 정도로 이상하게 돌아간다. 시장경제 체제에 살고 있는데 문제제기와 해결과정에선 시장(市場)이 쏙 빠져있다. 분명 경제문제인데도 정치적인 이슈로 변질되고 있다. 수익성은 외면한 채 무작정 공공성만 요구하는 시선이 금융기관을 짓누르고 있다.

이렇다보니 금융계가 부지불식간에 사리사욕만 챙기는 몰염치한 기관으로 전락했다.

요즘 금융기관이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기사는‘돈을 많이 벌었다’는 내용이다. 신문에 ‘사상 최대 수익’이란 제목이 등장하면 어쩔 줄 몰라 한다.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돈을 못벌면 못 번다고 두들겨많고, 많이 벌면 많이 번다고 비난하니 어쩌면 좋으냐고 푸념하고 있다.

금융기관이 여론의 표적이 되는 건 원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경영부실을 메웠던 뼈아픈 과거가 바로 그것이다.

굳이 이 같은 과거를 들추지 않더라고 금융기관에게 공공성을 요구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공공성을 요구하는 방법과 절차가 잘못됐다.

금융기관 수장들이 대 놓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면 언론은 대서특필하고 금융기관은 전전긍긍하며 개선책을 내놓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국민에게 모든 걸 까발려 놓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대안을 내 놓으라는 식이다. 사전 조율이나 협의는 찾아볼 수 없다. 각종 모임에서 발언하는 금융기관 수장들의 모습을 보면 최고 정책 결정자라기보다 정치인처럼 느껴진다. 발언이 몰고 올 후폭풍은 생각지 않고 직설적인 요구를 한다. 오죽하면 금융기관 CEO들 사이에서 명동 은행회관 14층 혐오증이 생겼을까.

금융당국 수장들이 왜 그럴까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들이 정치인처럼 나서는 건 정권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사실 MB 정부 만큼 직설적인 정부도 없었다. 물가도, 부동산도, 심지어 인사(人事) 정책도 직설적이다. 물가를 잡겠다고 이른바 ‘MB 물가’를 만들었고 기름값과 통신요금을 반 강제적으로 내리게 만들었다. 또 집값을 잡겠다고 보금자리주택을 마구 지었다.

이후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 ‘부자 정부’ 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따뜻한 경제’ ‘동반성장’을 내세웠는데 이 또한 직설적인 정책을 통해 실현해 나갔다. 시장경제를 수호해야 할 공정거래위원장이 때때로 시장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건 이 같은 정책 방향에 보조를 맞추려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수장들의 발언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민이나 금융소비자를 유난히 앞세우는 건 정부의 뜻을 알기 때문에 시쳇말로 알아서 기는 것이다.

다 좋다. 서민을 위하고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순 없다. 그러나 시장을 무시하고, 절차를 생략한 채 무조건 몰아붙이면 득보다 실이 더 많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직설적으로 몰아붙이면 해결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 갈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카드 수수료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곳저곳에서 “우리도 낮춰 달라” 고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문제의 근원에 대한 심사숙고가 없이 보여주기식 정책을 펴다 보니 잡음이 생긴 것이다.

다행이 국민들은 현명하다. 작금의 문제가 미국처럼 시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이른바 ‘여의도 시위’를 펼쳤지만 국민들에겐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묘하게 흘러가는 이 같은 분위기를 빨리 잡아야 한다. 정치적 배경이 깔린 ‘금융포퓰리즘’을 멀리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내려라” “낮춰라” 직설적, 강압적으로 나오면 합리적인 결과 도출은 불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선 부메랑식으로 서민이 되레 피해를 볼 수 도 있다.

금융당국이 볼 때 불합리한 게 있다면 사전조사를 충분히 하고, 실무자급에서 의견조율을 하고, 더 나아가 공청회도 개최하는 등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아무 말이나 내 뱉는 정치인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민희진 "음반 밀어내기 권유 사실…하이브에 화해 제안했다"
  • "제발 재입고 좀 해주세요"…이 갈고 컴백한 에스파, '머글'까지 홀린 비결 [솔드아웃]
  • 부산 마트 부탄가스 연쇄 폭발…불기둥·검은 연기 치솟은 현장 모습
  • "'딸깍' 한 번에 노래가 만들어진다"…AI 이용하면 나도 스타 싱어송라이터? [Z탐사대]
  • BBQ, 치킨 가격 인상 또 5일 늦춰…정부 요청에 순응
  • 트럼프 형사재판 배심원단, 34개 혐의 유죄 평결...美 전직 최초
  • “이게 제대로 된 정부냐, 군부독재 방불케 해”…의협 촛불집회 열어 [가보니]
  • 비트코인, '마운트곡스發' 카운트다운 압력 이겨내며 일시 반등…매크로 국면 돌입 [Bit코인]
  • 오늘의 상승종목

  • 05.3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4,328,000
    • -1.54%
    • 이더리움
    • 5,289,000
    • +0.51%
    • 비트코인 캐시
    • 640,500
    • -1.76%
    • 리플
    • 722
    • -0.82%
    • 솔라나
    • 232,400
    • -1.4%
    • 에이다
    • 628
    • -0.16%
    • 이오스
    • 1,134
    • -0.44%
    • 트론
    • 156
    • +0%
    • 스텔라루멘
    • 148
    • -0.67%
    • 비트코인에스브이
    • 85,800
    • -1.61%
    • 체인링크
    • 25,240
    • +0.24%
    • 샌드박스
    • 602
    • -3.2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