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파워 '모피아' 산하기관·금융계 접수

입력 2011-06-15 11:03 수정 2011-06-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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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그 영원한 철밥통]①기획재정부 <상>장·차관 출신

▲모피아라 일컫는 옛 재정부 역대 장·차관들은 금융계는 물론 정부 산하기관 주요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사진은 기획재정부가 들어서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사진=노진환 기자)
역대 기획재정부(옛 재무부·재경원·재경부 포함) 출신 장관들은 주로 기업에 다수가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은행 등 금융계는 물론 전관예우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부 산하기관과 로펌·대학교수 사회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을 ‘모피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정부 고위직과 산하기관, 금융회사 등 주요 자리를 독식한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시중은행장이 재무부 ‘사무관’ 옆에 서서 1시간 넘게 말도 못 붙이고 기다렸다는 얘기는 아직도 금융계에 전설처럼 회자되며 관료의 막강한 파워를 짐작케 하고 있다.

모피아의 핵심 라인은 금융정책실(국) 출신들이다.

우선 재무부 출신 장관들 중 기업에 자리를 잡은 인물로는 강경식·임창렬·진념 전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직업이 장관’이라 불리는 진념 전 장관은 1990년 재무부 차관, 1991년 동력자원부 장관 등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두루 요직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노동부 장관(1995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을 맡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장관(2000년)을 지냈고, 퇴임 이후에는 LG전자와 포스코 청암재단 등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삼정KPMG의 고문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강경식 전 장관은 1982년 1월 재무부 차관이 된 지 6개월 만에 장관 자리를 꿰찬 후, 1997년 3월에는 재경원 장관 및 경제부총리가 됐다.

기아부도사태 처리·금융개혁법안 통과에 전력했지만 모두 실패해 결국 1997년 국제금융기구 구제금융사건을 맞기도 했다. 현재는 동부그룹 상임고문이다.

임창렬 전 장관은 1991년 재무부 증권국 국장, 통상산업부 장관을 거쳐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직을 수행했다.

임 전 장관이 민간 기업으로 이동한 건 2006년 3월로 알앤엘바이오 회장 자리에 앉았다. 2010년 4월부터는 회장직을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킹만수’로 통하는 강만수 전 장관은 1988년부터 재무부 보험국·이재국·재정금융국장을 차례로 거쳐 1994년 재경원 세제실장으로 승진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재경원 차관을 역임한 후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인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이동했다.

2008년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에 올라 고환율 정책을 펼치다 논란을 일으켰지만,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 등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게다가 올 3월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국책금융기관인 산업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꿰찬후 우리금융지주와의 합병을 통한 메가뱅크를 추진, 또 한 번의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이규성 전 장관은 1988년에 재무부 장관자리에 발탁됐다. 2003년부터 8년째 코람코자산신탁 회장을 맡고 있다. 정영의 전 장관은 우리투자증권의 고문이다.

사공일 전 장관은 고위 관료 출신들의 단골 재취업처라 할 수 있는 무역협회장 자리를 2009년 10월부터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사 전 장관은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후 1993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2003년 고려대학교 석좌교수, 2008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위원장을 거쳐 2009년 무역협회 회장 자리에 오르는 등 관료-대학-관료-산하기관 등 자유롭게 넘나 들었다.

한승수 전 장관은 관료·교수·정치인·국제기구·로펌 등을 오가는 등 사 전 장관보다 더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와 영국·미국·일본 등 국내외 대학에서 교수를 했던 그는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후 1988년 12월 상공부 장관이 됐고, 1996년에는 다시 국회로 옮겼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재경원 장관 겸 부총리, 2001년에는 외교통상부 장관, 다시 16대 국회의원, 연세대 교수, 유엔사무총장 기후변화특별대표를 거쳐 2009년 10월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이동했다.김앤장 고문뿐 아니라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이사회 의장, 글로벌 서스테이너빌리티 위원직도 겸하고 있다.

행시 4회인 전윤철 전 장관의 이력도 진념 전 장관 못지않게 화려하다.

그는 1995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1997년 공정위원장, 2000년 기획예산처 장관, 2002년 재경부 장관을 지냈다.

2003년에는 감사원장을 맡는 등 진 전 장관과 함께 직업이 장관이라는 말을 듣는 몇 안되는 경제 관료 중 한 사람으로 지금은 조선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다.

행시 6회인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경제부총리)은 재무부 재정금융심의관을 끝으로 퇴직한후 대우반도체 대표, 한국신용평가 초대 사장,금감위원장을 재경부 장관, 코레이 이사회 의장등을 두루 역임했으며 현재 코레이 상임고문으로 재직중이다.

행시 10회 출신으로 2년4개월간 재임 후 최근 퇴직한 윤증현 전 장관 역시 1997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 1999년 아시아개발은행 이사, 2004년에서 2007년 8월까지는 금감위원장을 거친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활동하다 2009년 재정부 장관으로 다시 복귀했다.

재무부 출신 관료들이 승승장구하며 어렵지 않게 퇴직 후 재취업을 할 수 있는 것은 끈끈하고 촘촘하게 엮여 있는 인맥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평가는 엇갈린다.

재무부 출신 장·차관들이 있었기에 빠른 속도로 외환위기를 극복,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현 경제위기를 타개할 능력이 없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환은행 론스타 헐값 매각 등 실패한 정책으로 꼽히는 사건의 중심에는 대부분 재무관료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경제 전문가들도 재무부에 대해 동전의 앞뒤와 같다고 평가한다.

이들의 결속력은 업무 효율성 극대화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조직 이기주의라는 비판도 항상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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