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방산업 메카라고?… 손님 끊긴 지 오래됐죠”

입력 2011-01-27 11:00 수정 2011-01-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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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식품 홈쇼핑 구매 타고 예전처럼 ‘보약’ 찾는 이 없어

수도권의 대표 한약재 시장인 경동시장 내 서울약령시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10여년전 만 해도 이즈음이면 부모님 보약을 짓거나 설 제수용품을 사는 손님들도 복적였던 이곳이 요 몇년 새 부쩍 활기를 잃고 있다. 사람들로 가득 차 흥정하며 가게 하나를 지나가기 어려웠던 시장 골목은 이제는 가격표만 바람에 나부끼며 기약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5일 찾은 서울약령시는 한파를 감안하더라도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문을 걸어 잠근 약재상이 서너집 걸러 한집이었고 그나마 문을 연 곳도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 있었다.

한약재 시장임에도 약재상 사이로 간간히 정육점 등 일반 가게도 눈에 띈다. 한약재 시장의 변해가는 최근 모습이었다. 한약재뿐만 아니라 잡곡, 일반 채소와 과일 가게들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장사가 잘 되는 편은 아닌 듯 상인들 표정은 굳어 있다. 그나마 활기를 띠며 운영되는 곳은 홍삼, 인삼 포장용 선물세트를 파는 가게가 대부분이었다.

“한약재를 사러오는 손님들이 많이 줄었어요. 밖을 한번보세요. 실제로도 휑하잖아요.” 20년을 넘게 경동시장에서 한약재 상점을 운영해온 임춘분(66·여)씨의 첫마디다. 가게 밖의 인적 끊김이 시장의 오늘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임씨의 가게는 이제 3개월도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국산 약재 값도 올랐고 지난해 10월 불거진 중국 수입산 약재 값 상승도 한 몫 했다. 큰 도로변에 위치한 점포들도 찾는 손님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썰렁했다. 설 연휴 대목을 앞두고 부모님 건강을 위해 한약을 사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그나마 지나가는 손님을 위해 따뜻한 차를 대접해주는 상점 앞에는 한약재 구입에 관심이 있는 5~6명 정도의 중·장년 남녀들만이 서성일 뿐이었다.

다른 상점가게 주인인 안분임(57·여)씨는 “직원 20명이 있지만 하루 평균 20만원을 벌어들이기 힘들다”며 “예전에 300만원씩 벌 때 와 수익차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안씨는 “대부분의 점포 주인들은 임대로 들어와 운영을 하다가 적자를 면치 못해 문을 닫는 곳도 있다. 현재 쓰고 있는 건물이 우리 꺼라 그나마 나은 편이다”라고 밝혔다.

한약재 시장이 추락하자 그 자리를 정육점등 일반 상점이 들어왔고 일반 상점이 메우지 못한 약재시장에는 비어있는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안씨의 걱정거리 중 하나는 예전처럼 설 명절 때 부모님 선물을 위해 발품파는 직장인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재 값도 3~4배 정도 올랐다. 안씨는 “국산 물량 확보에 한계가 있고 중국산 조차 물량이 딸리고 있다. 게다가 좋지 않은 기후적인 요인으로 인해 작물 재배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한약재 상가와 공존했던 한의원도 지금은 절반가까이가 문을 닫았다. 안씨는 “이러다간 앞으로 2~3년 내에 약재상은 모두 사라질 판”이라고 말했다.

한약시장의 불황은 달라진 인식때문 이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은 재래시장에서 판매하는 한약보다 홈쇼핑에서 선보이는 건강식품, 직접 다려먹는 보약보다는 홍삼과 인삼, 흙마늘 등 구입하기 편리하고 패키지로 만들어진 상품을 선호한다.

명절 선물문화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예전 부모님 선물로 보약을 다려 주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현재는 현금으로 대체하고 있다. 예전처럼 가정형편이 어렵고 몸이 아플 때 보약이 좋은 선물로 여겼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영양섭취가 과도해 생기는 고혈압과 당뇨등 가장 많이 걸리는 질병으로 바뀐 것도 한약의 필요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약재상들은 동네 한의원에서 구할 수 없는 약초인 겨우살이 등을 팔며 매출을 올리고 있는 형편이다. 한 상점주인은 “전체 매출이 지난해 대비 30~40% 줄었다. 한망씩 판매하는 겨우살이도 마진이 1500~2000원”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한약재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도 한 몫한다. 서울약령시협회 관계자는 한약의 시장 침체에 대해 “한약은 복용시 금지된 음식이 많고 제조과정부터 보관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기도 하는 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차원에서도 한방진흥센터를 만드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좀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동시장=동대문구 제기동, 용두동, 전농동 일대의 서울약령시, 경동신시장, 구시장, 경동빌딩, 한솔동의보감, 기타 유사시장으로 이뤄져 있다. 6?25이후 경기도 북부 일원과 강원도 일대 농민들이 생산?채취해 오는 농산물과 채소, 임산물이 옛 성동역과 청량리역을 통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서울약령시=조선왕조 때 여행자에게 무료숙박를 제공하고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는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던 보제원(普濟院)이 있던 자리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약재 등의 특종 물품을 취급하는 전문시장으로 변모했으며 현재 서울에서 소비되는 인삼과 꿀의 4분의 3, 전국 한약재의 약 3분의 2가 이곳을 통해 유통된다. 1995년 ‘서울약령시’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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