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울산공장 르포] “공장이 돌아가야 모두 다 살지요”

입력 2010-11-22 10:48 수정 2010-11-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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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비정규직 파업에 멈춰버린 현대차...시민단체까지 가세...정치파업 변질 조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이 시작된 지 8일째인 11월 22일 아침.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주변은 차가운 초겨울 바람만큼이나 스산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첫 출근길에서도 활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둑어둑한 새벽을 달리는 출근버스 안에 타고 있던 현대차 근로자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오전 7시. 2공장 앞에서는 현대차 보안요원들이 입구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가운데 아침 일찍부터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이 비정규직 노조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자못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현대차 한 근로자가 “이거 못 들어가는 거 아인교?”라며 근심 섞인 농담을 건제지만, 동료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울산 공장 정문에서는 컨테이너 박스로 바리케이트가 설치된 가운데 비정규직 노조가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시민단체와 진보성향 정당 등이 잇달아 성명을 내면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파업은 이제 시민단체와 정당까지 가세한 정치 파업으로 변질될 조짐마저도 보이고 있다.

정문을 담당하는 보안 직원들도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가 사전에 공장 측에 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문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점거 농성이 진행 중인 1공장 역시 삼엄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공장장의 승인 없이는 현장 인력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공장 관계자는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근로자가 아닌 시민단체 등이 불법 점거 구역으로 진입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20일 비정규직 노조원이 분신을 기도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 근로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곳은 1공장의 CTS공정설비. 차체 도장을 위한 전 단계로서 도어와 차체를 다시 분리하는 핵심 공정중 하나다. 이 라인이 멈춰서면서 울산 공장 전체 생산라인의 가동이 중단됐다.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2층과 3층의 독립된 구역을 점거하고 있어 대화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공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공장 근로자들은 각 작업반 휴게실에서 즉시 투입을 위해 대기하고 있지만 점차 피로감이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파업으로 공장 가동 중단이 장기화되면서 정규직 근로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현대차지회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가 교섭주체인 만큼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면서 “사태해결을 위한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겠지만 비정규직 노조도 무엇이 사태해결을 위한 합리적 해결책인지 냉정히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21일까지 생산차질 대수는 7732대, 매출손실은 903억원에 이른다. 22일에는 매출손실이 1000억원을 넘어서게 된다.

이처럼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울산공장 작업반장들은 지난 19일 비정규직 노조 근로자들에게 파업 중단을 호소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소재생산관리부의 송기현 반장은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비정규직 문제를) 마음으로는 이해한다”면서도 “아직 확정판결을 위해 계류 중인 사안을 가지고 불법적으로 설비를 점거해서 공장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비정규직 문제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 정규직의 고용도 불안해진다”며 “모든 근로자들이 당장이라도 작업에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으니 하루빨리 직장점거를 풀고 작업에 복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차 근로자들의 불안감은 시민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울산 시내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이정자(65·가명)씨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파업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뒤숭숭하니까 상점들도 그게 걱정이지”라며 파업으로 인한 후유증을 걱정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공장 근처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직원도 “당장 영향은 없지만 손님들이 예전에 비해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며 긴장된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현대차 전체 공장근로자(3만8560명)의 22%가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이며 이중 비정규직 노조 소속은 2000여명에 달한다. 비정규직 노조원 전체가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현대차 국내 공장 전체의 생산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비정규직 노조원 파업은 ‘2년 이상 근무한 하청업체 직원은 원청(현대차)업체의 정직원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그 동안 미지급된(비정규직으로 간주되면서) 임금 차액을 지불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반면 현대차는 대법원이 판결후 관련소송을 고법으로 환송한 만큼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직 소송이 진행중이다”며 “비정규직 노조와는 단협을 포함한 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도급업체 직원의 연봉은 현대차 정규직 노조원 연봉보다는 적지만 현대차 외부 협력업체 정규직 직원 임금의 1.5배 이상”이라며 “처우개선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공안부도 이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의 불법파업에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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