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만 탓하는 건설업체는 차라리 사업 접어라

입력 2010-07-21 10:49 수정 2010-09-28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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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提言②]건설업계, 한탕주의 버리고 합리적 시장 기틀 마련하라

“거짓말에 대한 정의를 논하시오.”

▲방형국 경제부 부국장
몇 년 전 프랑스 대입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에 나온 문제다. 논술시험이라 정답은 없었지만, ‘거짓은 필요악(惡)‘이란 투의 답을 출제위원회는 원했었다. 거짓말이 없으면 과연 이 세상은 맑아지고, 살기 좋아질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에게 ‘본능과 욕심’이 존재하는 한 거짓말이 없으면 인류에게는 평화란 가당치도 않고, 남녀간 사랑은 물론 인류애도, 신뢰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사실이다.

인간사, 세상사가 그렇다. 선(善)으로만 모든 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염치도 있고, 도리도 있고, 요령도 있어야 한다. 필요악인 거짓말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관계도 편해지고, 세상은 돌아가게 된다. 이상(理想)을 추구하면서도, 현실(現實)에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한 그렇다.

“주택시장이 정부의 규제 때문에 죽었다”는 건설업계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주택시장이 이 지경이 된 가장 큰 책임은 건설업체에 있다. 한탕주의에 빠져 있는 그들의 이기적인 본능과 탐욕이 시장을 이렇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어느 시장 참여자가 그렇지 않겠는가 하고 반문하겠지만, 시장조사도 하지 않은 채 산기슭이나, 논바닥에 대단지 아파트를 덩그러니 지어놓고 팔겠다는 게 그들이다. 가치에 대한 정확한 조사 없이 인근 집값이 얼마이니 이 아파트는 얼마쯤 받아야 한다며 분양가를 일확천금 식으로 부풀려 온 것이 주택산업의 현주소다.

단돈 천원짜리 사탕을 파는데도, 재료비 얼마, 포장지 얼마, 유통비 얼마 등등 정밀한 원가계산과 정교한 시장조사가 이뤄지는데 수천억 규모의 사업을 하면서 단기간에 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해온 게 이제까지의 방식이었다. ‘지으면 팔린다’는 미몽(迷夢)을 거짓말로 잘 포장해 수요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이들의 경영이었다.

광고에 멋진 여배우의 우아한 모습이 등장하고, 삶의 질과는 아무 관계없는 브랜드 가치가 수백억원대로 치솟고, 친환경을 넘어 커뮤니티 설계까지 이뤄지는 아파트의 외형은 화려하다. 하지만 주택산업의 속은 강정이다. 텅 비어있다.

지금 주택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구조가 ‘천수답’(天水畓)이라는데 있다. 천수답 구조가 시장과 수요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규제를 좀 풀면 마구 달아오르고, 규제를 가하면 확 식어버리는 구조다. 불안하다. 시장이 이렇다 보니 재수 좋아 떼돈을 벌었다가도 일거에 망하는 건설업체와 시행업자들이 속출하고, 투기꾼이 때를 가려 설치고, 집을 잘 못 사 하루아침에 생활형편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분양이 잘 되면 아무 근거 없이 분양가를 부풀리고, 팔리지 않으면 정부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달라고 매입을 독촉하거나, 규제를 풀어달라고 정부의 바지끄댕이를 잡아끌며 땡깡을 부리는 일이 되풀이 되는 것도 주택시장이 천수답 구조이기 때문이다.

악순환되고 있는 천수답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건설업계가 할 일이다. 사활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사회 구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와 핵가족화 시기가 맞물려 있을 때에는 누가 봐도 주택시장의 활황이 예상됐었다. 사정이 바뀌었다. 인구(人口)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감소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진보적인 연구기관에서는 5년 뒤인 2015년부터 수도권 인구도 내려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구 감소는 근본적인 변화다. 누가 봐도 수요 감소가 예상된다. 천수답 구조로는 주택산업 자체의 존립에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설사 정부가 이번에 규제를 대폭 풀어 주택거래가 활발해지고, 시장이 살아나더라도 이런 구조에서는 주택시장 침체는 다시 올 수밖에 없다. 규제완화 덕에 지금 살아남았다 해서 그때 살아남거나, 현재의 CEO가 그때까지 경영권을 갖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1%도 안 된다.

건설업체 사장 또는 시행업자들은 사업의 애로사항으로 흔히 정부의 잦은 정책변화를 지목한다. 정부가 주택시장을 놓고 잦은 정책변화를 하기 때문에 사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시장이 안정돼 있는데 정부가 할 일이 없어 정책을 남발하고,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 시장을 죽이겠는가. 동서고금을 통틀어 어떤 독재정권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정부가 주택시장에서 잦은 정책변화를 가져온 것은 시장의 관행과 행태에 맞는 규제를 가해야 그나마 최소한의 질서와 공정한 거래가 지켜졌기 때문이다. 분양가를 규제했던 것은 그렇지 않으면 분양가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기 때문이었고, 대출을 규제한 것은 그러지 않으면 투기꾼의 ‘준동’(蠢動)으로 가수요에 의해 집값이 폭등해왔고, 주택업체는 가수요를 자극해야 분양에 성공할 수 있었던 구조와 관행 탓이다.

천수답 구조에서 시장이 이상 과열현상을 보이고, 투기가 판을 치며, 수요자와 업자 사이에 공정치 않은 거래가 일상 이루어질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보고도 뒷짐지고 있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이때 나서는 정부의 규제를 애로사항이라 몰아부치며 탓하려면 차라리 사업을 접어라.

주택시장이 이렇게 된 것을 놓고 누가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건설업계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 한탕주의를 버리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산업으로 이끌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 초석을 마련한 것은 건설산업이다. 한때 국가 재정의 30%이상을 책임지고 있었던 산업도 건설업이다. 이제까지 그런 산업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한 산업은 나올 수가 없다.

대한민국 산업의 맏형은 건설산업이다. 그러나 지금 어떤가. 투자규모나 매출에서 전자 자동차 IT에 비해 한참 뒤져있다. 산업 구조의 변화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산업 수준은 한참 뒤쳐져 있는 것은 어쩔 것인가. 전자 자동차 업체들이 세계시장의 선두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건설업계는 안방에서는 주택매출과 관공사 매출, 밖에서는 하도급 업체에 만족하며 수십 년 동안 세계적인 플레이어를 배출해내지 못했다.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업체나 감리업체가 하나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주택시장이 정부의 규제 때문에 죽었다”는 건설업계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은 ‘필요악’으로서 더러는 평화와 신뢰, 사랑을 가져다주기는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 거짓말일 뿐이다. 건설업계 스스로 씻김굿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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