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현대인의 초상…공동체 속 만남과 이별의 기록
탈북자와 성소수자 정체성 통해 청춘의 성장담 그려내

영화 ‘3670’은 탈북자이자 성소수자인 청년 철준(조유현 분)이 새로운 공동체에 발을 들이며 관계와 소속,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4관왕을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이 영화의 연출자는 박준호 감독이다. 박 감독은 최근 열린 제6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상 영예를 안았다. 철준을 연기한 배우 조유현도 제4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을 받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난 박 감독은 “탈북자와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다룬 작품인 만큼 실제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라며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영화로 담아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기존 한국 퀴어영화가 개인의 감정에 집중했다면 ‘3670’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조명한다. 영화 제목은 ‘종로3가역 6번 출구 7시에 만나자’라는 뜻이다. 맨 끝의 0은 술 번개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다. 영화는 이처럼 공간과 만남을 매개로 사회적 소수자들이 관계를 맺고 소속감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박 감독은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많은 영화에서 그런 사회적 관계가 생략되다 보니 인물이 현실의 사람이라기보다 판타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며 “그래서 커뮤니티에 속한 인물의 삶과 공동체의 풍경을 함께 담아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탈북자와 성소수자라는 두 소재를 함께 다룬 이유 역시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대학 시절 탈북 학생들의 입시를 돕는 자원봉사를 했던 박 감독은 미디어 속 탈북민의 모습과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사회적 편견에 가려진 개인의 일상과 관계를 최대한 리얼하게 담고 싶었다는 그다. 박 감독은 “미디어가 탈북자를 묘사하는 방식이 현실과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탈북자 중에서도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주인공인 철준은 자신만 외롭고 소외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 외로움과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대인의 삶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괜찮은 척 살아가지만, 각자의 외로움을 품고 있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자기소개서 장면도 이런 문제 의식과 연결된다. 철준은 대입을 위해, 주변 친구들은 취업을 위해 자소서를 쓴다. 박 감독은 “자소서를 쓰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라며 “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경험이기도 하다.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증명할 것인가란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영화의 시선은 인물에게 과도하게 밀착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박 감독은 공원 장면 등에서 롱테이크와 롱숏을 적극 활용한 이유에 대해 “관객이 철준 한 사람에게만 몰입하기보다, 인물들이 살아가는 풍경 자체를 바라봤으면 했다”며 “표정과 감정을 강조하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엔딩은 노래 부르는 걸 어색해하던 철준이 많은 사람 앞에서 열창하는 모습이다. 박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 대해 “누구나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가 적응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런 첫 발걸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의 긴장과 두려움, 소속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경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3670’은 탈북자와 성소수자라는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에서 출발하지만, 영화가 끝내 도착하는 곳은 결국 누구나 겪어봤을 외로움과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다. 박 감독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야기와 인물에 끌린다”며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은 삶을 계속 영화로 담아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