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시간 늘려 수수료 경쟁?…투자자 보호 빠진 ‘12시간 증시’ 논란 [한국거래소의 역설①]

입력 2026-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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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반 편집 이미지. (출처=챗GPT)
▲AI 기반 편집 이미지. (출처=챗GPT)

한국거래소가 주식시장 거래시간 연장 방침을 강행하면서 시장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외 투자자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거래소 간 경쟁에 대응하겠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보호 장치와 회원사 준비 상황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12시간 증시’로 가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정규시장 전후 시간대를 확대하는 방식의 거래시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대체거래소(ATS)인 넥스트레이드(NXT)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거래를 제공하는 상황에서 거래소 역시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거래소는 해외 투자자의 국내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과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 거래시간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 시장과 비교해 국내 시장의 거래 가능 시간이 제한적인 만큼, 장 전후 시간대 수요를 제도권 시장 안으로 흡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시간 연장에 따른 유동성 보완 방안과 관련해 “프리·애프터 마켓 전용 시장조성제도 도입 등으로 보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장 전후 시간대에 유동성이 얇아지는 문제를 시장조성 기능으로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거래시간 확대가 곧바로 시장 선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증시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고 미국처럼 시차가 큰 구조도 아닌 만큼, 단순히 거래 가능 시간을 늘리는 것만으로 해외 투자자 접근성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핵심은 투자자 보호 장치다. 장 전후 시간대는 정규장보다 참여자가 적고 유동성이 얇아 호가 공백, 가격 왜곡, 시장별 가격 괴리가 커질 수 있다. 이 경우 빠른 주문 처리 시스템과 알고리즘 매매 역량을 갖춘 기관·외국인 투자자가 개인투자자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크다. 정보 비대칭이 확대되면 거래시간 연장이 오히려 개인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는 유동성공급자(LP) 참여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괴리율 확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장 전후 시간대에 기초자산 가격 반영이 원활하지 않거나 LP 호가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으면 ETF 시장가격이 순자산가치와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복수거래소 체제가 완전히 안착하기 전에 거래시간까지 늘릴 경우 가격 발견 기능 강화보다 호가 분산과 민원 증가가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증권사 부담도 적지 않다. 거래시간이 늘어나면 주문·체결 시스템뿐 아니라 고객 응대, 위험관리, 내부통제, 장애 대응 인력까지 사실상 장시간 운영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정규장 중심으로 짜인 기존 운영 체계를 단기간에 12시간 거래 구조로 전환하면 인력과 비용 부담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시간 확대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순서가 맞지 않는다”며 “LP 운영 기준, 거래소·회원사 시스템 점검, 장애 대응 체계, 야간 투자자 보호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가 길어지는 만큼 민원과 장애 가능성도 커지는데, 투자자 보호 장치 없이 시간만 늘리면 개인투자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 전산장애 민원은 지금도 상당한 상태다. 대형 증권사뿐 아니라 중소형 증권사에서도 빈번하게 전산장애 민원이 이어졌다. 올해도 증시 활황으로 거래 급증과 함께 다수 증권사에서 전산장애가 발생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NXT 출범 이후 복수거래소 체제가 시작된 데다 증시 활황으로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이미 시스템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거래시간 연장이 강행되면 대형 증권사는 물론 전산·인력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형 증권사에서 장애와 민원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계도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이창욱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증권본부장은 거래시간 연장과 관련해 “쓰리보드 시스템에서 원보드 시스템으로 바꿔 가는 상황인 만큼 준비를 더 많이 해서 투자자들의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말이면 원보드 시스템 개발이 되는데 서둘러 무리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안정화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래소 내부에서는 NXT와의 경쟁 상황을 고려하면 거래시간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NXT가 장 전후 시간대 거래를 제공하는 상황에서 거래소만 기존 체제를 유지할 경우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 측면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장, 공시, 시장감시 등 자본시장 인프라 기능을 거래소가 담당하고 있는 만큼 거래소 경쟁력 약화가 시장 전체 인프라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거래소 관계자는 “대체거래소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한국거래소가 많이 희생한 부분이 있다”며 “상장이나 공시, 시장 감시 등 비용을 사실상 거래소가 다 감당하는데 수수료 싸움으로는 넥스트레이드와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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