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도 부산'과 '월드클래스 부산'의 대장정…그리고 달라진 부산 유권자

입력 2026-06-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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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부산 부전역에서 출정식하는 전재수 후보(왼쪽)와 부산역에서 열린 국민의힘 부산 합동 출정식에 참석한 박형준 후보. (연합뉴스)
▲21일 부산 부전역에서 출정식하는 전재수 후보(왼쪽)와 부산역에서 열린 국민의힘 부산 합동 출정식에 참석한 박형준 후보. (연합뉴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6·3 지방선거 부산시장 선거는 사실상 두 개의 부산이 충돌한 선거였다.

전재수의 '해양수도 부산'과 박형준의 '월드클래스 부산'

표면적으로는 두 후보의 경쟁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부산의 미래를 설명하는 두 개의 서사가 맞붙은 대결이었다.

전재수 후보는 이재명 정부의 정치적 효능감을 전면에 내세웠다.

해수부 이전과 HMM 이전, 북극항로 개척, 동남투자공사 설립까지. 국가 권력과 국가 자본을 부산으로 끌어오는 전략이었다.

전재수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지역의 아젠다가 국가의 이익과 만날 때 가장 강력한 성장 동력이 만들어진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반면 박형준 시장은 '월드클래스 부산', 사회과학자 출신답게 데이터와 지표, 글로벌 담론을 앞세웠다.

부산은 이미 변화하고 있으며 지금도 올바른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논리였다.

정권 프리미엄과 행정 프리미엄의 충돌이었다.

선거 초반 흐름은 분명 전재수 쪽이었다. 정권교체 직후 형성된 기대감과 해수부 이전 이슈는 강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선거 프레임은 완전히 달라졌다.무능론으로 시작된 공방은 결국 '까르띠에 대 엘시티'의 전쟁으로 이동했다.

한쪽은 명품 시계 논란을 상징하는 도덕성 문제를 파고들었고, 다른 한쪽은 엘시티 특혜 의혹과 과거 행적을 끌어내며 맞불을 놨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두 캠프의 전략 차이가 드러났다. 민주당 캠프는 선거 내내 우세한 판세를 가진 선수처럼 움직였다.

민주당은 정권교체 직후의 기대감과 해양수도론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도 결정적 순간마다 리스크 관리를 우선했다.

반면 박형준 캠프는 달랐다. 방어보다 반격을 택했고 수세보다 공세를 선택했다. 선거가 혼전으로 흐를수록 상대보다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좋은 판을 얻었지만 판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2.62%의 혼전을 가지고 온 이유다.

부산광역시 북구, 한동훈? 한동훈! 유권자!!

반면 북구갑 보궐선거는 또 다른 의미를 남겼다. 이번 선거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한동훈이 아니라 부산 유권자였다.

▲<YONHAP PHOTO-0634> 포옹하는 한동훈·서병수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무소속 한동훈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4일 부산 북구 선거사무소에서 선거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입장해 서병수 명예선대위원장과 포옹하고 있다. 2026.6.4    handbrother@yna.co.kr/2026-06-04 01:14:10/<저작권자 ⓒ 1980-2026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YONHAP PHOTO-0634> 포옹하는 한동훈·서병수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무소속 한동훈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4일 부산 북구 선거사무소에서 선거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입장해 서병수 명예선대위원장과 포옹하고 있다. 2026.6.4 handbrother@yna.co.kr/2026-06-04 01:14:10/<저작권자 ⓒ 1980-2026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정치의 변화 정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결과론적으로 한국에도 뉴욕시장 선거의 바람을 일으켰던 '조란 맘다니'식 선거 캠페인이 가능했다.

그리고 한동훈이 일으킨 바람은 북구를 넘어 지방선거의 오랜 공식이었던 코트테일 효과(연미복효과), 이른바 '줄투표' 현상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북구 만덕동의 한 유권자 사례를 보자.

부산시장 전재수(진보),국회의원 한동훈(보수),구청장 정명희(진보),광역의원 김효정(보수)

철저한 교차투표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정당을 구매하지 않았다. 후보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정부의 정치적 효능감은 인정하면서도 국회의원은 한동훈을 선택했다. 즉, 해양수도 부산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에 대한 견제를 택했다.

지역 행정은 정명희에게 맡기고 광역정치는 또 다른 기준으로 판단했다.

유권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하고 있었다.정치적 충성심보다 실용성을 선택했고, 이념보다 효능을 따지기 시작했다.

'누가 내 삶에 도움이 되는가.누가 더 효율적인가.누가 더 일을 잘할 것인가' 계산이 이전보다 훨씬 정교해졌다.

이번 선거는 부산 유권자가 정치 소비자에서 정치 투자자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 선거였다.

민주당의 숙제는 '뎁스', 국민의힘의 숙제는 '변화'

이 변화는 양당 모두에게 숙제를 남겼다.

민주당의 숙제는 뎁스다. 전재수라는 에이스는 증명됐다. 부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확인했다.

그러나 광역·기초의원 선거로 내려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에이스 한 명으로는 선거를 이길 수 있지만 정당을 만들 수는 없다.

전재수 이후를 이어갈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원외위원장으로 연결되는 선수층은 얼마나 두터운가?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부산 집권의 가능성을 확인한 선거인 동시에, 지역 정치 기반은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선거였다.

국민의힘의 숙제는 변화다.

박형준이라는 현역 프리미엄은 여전히 강력했다.그러나 북구갑에서 나타난 한동훈 현상은 부산 보수 정치 내부에 존재하던 세대교체와 혁신 요구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동훈 후보 지지자들이 샘터공원을 가득메우고 있다 (서영인기자 hihiro@)
▲한동훈 후보 지지자들이 샘터공원을 가득메우고 있다 (서영인기자 hihiro@)

과거처럼 정당 간판만으로 표를 모으던 시대는 끝나고 있다.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언어, 새로운 정치적 효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국민의힘 역시 부산에서 안정적 우위를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민주당의 숙제가 뎁스라면 국민의힘의 숙제는 혁신이다.

그러나 양당 모두가 직면한 더 큰 과제는 따로 있다. 이미 변해버린 부산 유권자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과거의 정치는 정당이 선거를 이끌었다. 이제는 유권자가 정당을 시험한다.

6·3 지방선거는 단순한 승패의 기록이 아니다.

부산 정치의 세대교체가 시작됐음을 알린 신호탄에 가깝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인공은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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