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여 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이 절박한 호소문 어디에도 전태일 자신의 임금 인상이나 개인의 영달을 요구하는 문구는 없다. 그는 자신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신음하던 15세 어린 ‘시다공’들의 건강을 걱정했고, 영세민 자녀들의 굶주림을 가슴 아파했다. 자신이 소속된 공장의 여건 개선을 넘어, 동료를 이야기했고 사회를 이야기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모진 현실을 꾸짖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가 이 지점에서 위대한 첫걸음을 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나보다 타인을, 사익보다 공익을 먼저 생각했던 이타적 연대에 있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중심에는 삼성전자의 노조가 있다. 사상 초유의 총파업을 사흘 앞둔 지금, 삼성전자 노사의 협상 테이블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과거 전태일 열사를 향했던 따뜻한 연민이나 응원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차갑고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왜일까.
삼성 노조가 내건 핵심 요구안의 골자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제도화하고 그 상한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가 땀 흘려 일한 만큼 정당한 몫을 요구하고, 성과급 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라는 주장은 정당한 권리다. 기업의 성과를 경영진과 주주만이 독식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웅장한 구호 아래 가려진 노조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사회적 책임과 국가 경제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노조의 시선은 철저히 ‘내 지갑’과 ‘내 사업부’의 이익에만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조 내부에서는 기이한 내홍이 벌어지고 있다. 한 달 새 4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했다. 파업의 정당성을 담보할 과반 노조의 지위마저 위태롭다. 이탈의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노조 내부의 이기심이다. 반도체(DS) 부문 위주로 짜인 성과급 요구안에 소외감을 느낀 가전·모바일(DX) 부문 직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 지도부가 공존과 연대라는 가치 대신 특정 사업부의 거대한 성과급만을 좇다 보니, 내부에서부터 ‘노노 갈등’이라는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대외 시선이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대동맥이다. 2개월 연속 수출 300억달러를 돌파하며 고군분투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 속에서 삼성전자의 파업은 단순한 한 기업의 가동 중단을 넘어, 국내 소부장 중소기업들의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국가 신인도를 갉아먹는 도미노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조는 파업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생존권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전태일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약자와의 연대, 사회적 공존의 정신은 노조의 이익투쟁 속에서 사라졌다.
국민들이 대기업 노조의 투쟁을 전폭적으로 응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진정한 노동운동의 리더십은 내 몫을 더 챙기는 칼날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넓은 품에서 나온다.
이재용 회장은 급거 귀국하며 “전 세계 고객께 사과드린다.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주사위는 18일 중앙노동위원회 교섭 테이블로 넘어갔다. 삼성 노조가 진정으로 국민의 박수를 받는 ‘위대한 노조’로 거듭나고 싶다면, 56년 전 청년 전태일이 던졌던 연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료와 대한민국 사회를 걱정하고 있는가.” ac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