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중동 전쟁 여파로 사우디아라비아 공장 건설 일정이 지연되고 중동 판매도 감소했다고 처음으로 공개 언급했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현대차그룹 글로벌 생산·판매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직접 인정한 것이다.
정 회장은 14일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양재사옥에서 열린 ‘로비 스토리 타운홀’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동 정세 영향을 묻는 질문에 “우려 많이 된다”며 “사우디 공장도 짓고 있는데 지금 좀 늦어질 것 같고 판매도 중동 쪽에서 많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은 곧 끝나겠지만 끝난 후 잘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 수장이 중동 전쟁 영향으로 사우디 공장 일정 차질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손잡고 킹 살만 자동차 산업단지 내 CKD(반조립제품) 기반 생산공장 구축을 추진 중이다. 해당 공장은 연간 5만 대 규모로 전기차(EV)와 내연기관차를 함께 생산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 4분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하지만 최근 중동 지역 지정학적 불안이 확대되면서 공사 일정과 현지 공급망 운영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중동 전쟁 장기화 시 물류 차질과 원자재 가격 변동, 현지 소비 위축 등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글로벌 경쟁 환경에 대한 위기감도 드러냈다. 그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체질 개선과 신기술 역량을 더 다져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중국과 글로벌 전기차 업체에 대한 평가도 내놨다. 정 회장은 “중국은 굉장히 빠르고 기술에 대한 관심도 높다”며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많이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테슬라나 중국 업체들처럼 전 세계 어느 회사라도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며 “고객이 더 만족할 수 있는 기능과 상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해서는 속도보다 안전을 우선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정 회장은 “기술은 채워나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기능 사용 중 문제가 생기면 고객이 기술 자체를 외면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에 더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로봇사업에 대한 생각도 공유했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양재사옥 로비를 ‘광장형 오피스’로 재구성하면서 조경 관리용 로봇, 배송 로봇, 의전 및 보안용 로봇 등을 배치했다. 정 회장은 “임직원들이 로봇을 보면서 회사가 가는 방향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활동 과정에서 장단점이나 개선할 점을 바로 피드백하면 반영할 수 있어 좋은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로보틱스 전환 전략과 관련해서는 “자동차만 해왔던 회사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만큼 시행착오도 있다”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간 균형, 조직 간 문화 융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행착오와 에러를 빨리 극복해 더 좋은 기술을 신속하게 내놓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개발 상황에 대해서도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로보틱스랩 등을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인력이 더 활발하게 일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주가 관련 질문에는 장기 경쟁력 확보를 강조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 주가가 70만원을 돌파한 데 대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속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기술과 품질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노사 관계에 대해선 “주주도 중요하고 국가 발전도 중요하다”며 “노사가 함께 효율적으로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혜롭게 잘 극복해 나간다면 전 세계에서도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