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화된 정치 구도선 배타성 커져
공동善 추구해 공당 모습 되찾아야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지상주의가 더 세졌다. 그러지 않아도 한국 정치에서 정당들이 유일한 주역처럼 판을 독점하고 있는데, 지난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치개혁법안은 정당들의 정치적 비중을 더 높였다. 법안 내용 중 특히 광역의원 정당비례대표 비율을 현행 10%에서 14%로 올리는 부분이 정당지상주의 강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원외 지역(당협)위원장도 역내 사무소를 낼 수 있게 한 조항이 일각에서 논란을 빚고 있으나, 지역 정당 활성화라는 이 조항의 취지는 원칙상 문제가 될 게 없다. 이보단 각 당이 의원들을 정하다시피 하는 비례대표제를 확대한다는 게 정당 독식·독점의 발로로 그 원칙에서부터 우려를 자아낸다.
비례대표제는 정당별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할당하는 방식이라 무소속 후보는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정치는 정당들만의 게임이 된다. 정치 지망생은 반드시 정당에 들어가 비례대표 후보 순번을 높게 받아야 당선된다. 정당들을 위한, 정당들에 의한 제도다. 이 제도가 내세우는 ‘비례성’도 철저히 정당 관점의 개념이다. 비례대표가 확대될수록 자연히 정당 단합도는 세지고 후보 순번을 정하는 당 지도부의 힘도 커진다. 물론 정당들의 순기능만 본다면 비례대표의 확대가 반가울 수 있다. 정당들이 다양한 사회이익을 표출·집약하고 유권자의 정치참여를 북돋고 정치엘리트의 충원을 통해 국정에 방향과 구심력·추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상(理想)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공당(公黨)에 기대되는 이런 이상적 순기능을 사당(私黨)으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이익단체처럼 변질된 현재 정당들이 수행하고 있는가? 근래 정당들은 특정 이익이나 편향된 이념, 특히 비상식적 극단론을 소리 높여 표출하고 각종 선거직·지명직에 충성파 인사를 충원하는 데 열성이다. 반면 반대쪽도 인정하며 다양한 입장을 집약·통합하는 일, 막힌 국정과정에서 신중한 조정을 통해 맥을 잡고 혈을 열어주는 일, 유권자의 효능감을 높여 시민의식을 높이고 자발적 정치참여를 이끄는 일에선 낙제다. 특히 나와 생각이 다른 편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편협한 흑백논리에 빠져 사회 양극화를 격화시키는 주범이 정당들이다. 그런데도 정당지상주의의 도구인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만 하는가.
과거 대중사회 시대에 정당들은 유권자의 정치사회화와 참여를 촉진해 민주주의를 견인했다. 그러나 탈대중사회를 맞은 오늘날 정당들은 과거의 위상을 잃었다. 복잡하게 분화하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이익표출은 정당보다 각종 이익단체, 온·오프라인 모임, 개인들이 더 잘 한다. 바뀐 시대에 정당이 존재가치를 유지하려면 분출되는 온갖 요구를 집약·통합해 국정의 중심을 잡고 방향을 이끄는 산출(output) 기능에 더 특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편협성을 극복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당으로서의 성격을 지킬 필요가 있다. 정당들이 각기 지엽적 정체성을 키우도록 하는 비례대표제는 이 점에서 적합하지 않다.
이번 정치개혁법안의 비례대표 확대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은 반발했다. 사당이나 이익단체와 큰 차이 나지 않는 이 군소정당들이야 비례대표의 대폭 확대를 주장할 만하다. 그러나 양대 거대 정당들이 그래선 곤란하다. 탈대중시대인 오늘날 수권정당이라면 지엽적 투입보다 전체적 산출 기능을 중시하는 공당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젠 정당에 대한 시대착오적 생각을 버릴 때다. 공천은 당원들만의 독점적 권한이라는 생각은 정당을 노조나 민간단체쯤으로 여기는 착각에서 나온다. 비례대표제도 그런 착각의 결과다. 정당들은 정치를 독점하지 말고, 공당으로서 배타적 울타리를 걷어 시민·민간단체, 언론, 전문가, 일반 유권자들과 어떻게 함께 작동해 민주주의의 공동 파트너가 될지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