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요 기업들이 연말 인사를 앞두고 잇따라 ‘인공지능(AI)발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AI·데이터·디지털 전환(DX)에 감각이 있는 ‘테크형 경영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 AI 성과가 수장들의 연임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체질변화가 기업의 생존에 직결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9일 글로벌 컨설팅사 콘페리의 조사에 따르면 향후 3년 간 조직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리더십 역량으로는 AI·기술 숙련도가 뽑혔다. △AI·기술 숙련(69%) △민첩성(58%) △위기관리(51%) △조직 참여 유도(20%) 순이었다. AI가 리더의 필수 역량으로 꼽히는 이유는 AI가 기업의 경영 성과와 혁신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 했기 때문이다.
멕킨지의 ‘2025년 AI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AI 고성과 기업들은 단순히 효율성을 넘어 성장과 혁신을 AI 목표로 설정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리더의 AI 비전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서 AI 고성과 기업이란 AI 사용으로 세전이익(EBIT)에 5% 이상 절감하고 조직이 AI 사용으로부터 ‘상당한’ 가치를 얻었다고 응답한 기업으로, 6%에 불과하다.
국내 ICT 기업의 수장들도 AI 체질변화 성과에 따라 연임 여부가 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AI 퍼스트(AI First)기업으로의 전환을 천명하며 국내 게임 업계에서 선제적으로 AI 변화에 대응해 2연임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관측이다. 크래프톤은 SK텔레콤(SKT)와 함께 과기정통부 주관의 ‘국가대표 AI 사업’ 정예팀에 선정돼 차세대 멀티모달 모델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인프라 투자에도 속도를 낸다. 1000억 원을 투입해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트를 구축하고 AI 연구개발, 인게임 AI 서비스 고도화 등을 추진한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의 경우에는 최근 카카오톡 개편으로 인한 이용자 불만에 따라 책임론이 불거진 상황에서 ‘챗GPT포 카카오’가 연임을 이끌 반전카드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개편안 설계는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총괄했지만, 결국 최종 결정권자가 정 대표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개편 논란 약 한 달여 만에 출시된 ‘챗GPT 포 카카오’ 서비스가 순항하며 여론을 뒤집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AI 전환기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수장이 교체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김영섭 KT 대표의 경우다. 김 대표의 임기 만료는 확실시됐다. 이달 4일 열린 이사회에서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다. KT는 현재 대표이사 후보 공개모집을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의 연임 포기에는 무단 소액결제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일각에선 그의 ‘AI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는 구현모 전 대표 때의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을 폐기하고 글로벌 빅테크인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협업하는 기조로 전환했다”며서 “정권이 바뀌면서 ‘소버린 AI’가 강조되니까 경쟁력이 밀릴 수밖에 없고 통신사 중 유일하게 ‘국가대표 AI 사업’에서 탈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