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조정 8년 3개월 만에 원점 >
‘盧 비자금 300억’ 뇌물로 판단
法 “노 관장, 재산 기여분 아냐”
2심 1년 5개월 만에 파기 환송
위자료 20억은 원심 판결 확정
‘불법원인급여’ 반환배제 법리 재확인
재산분할 1조3808억 금액 조정 전망
노태우→최종현 ‘300억 원’ 금전지원
“이 돈 출처, 대통령 재직 시 뇌물”
국가 자금 추적‧추징 불가능하게 해
“반사회성 현저…법의 보호영역 밖”
최태원(65)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4)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1조4000억 원 규모 재산 분할을 둘러싼 이혼 소송이 16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지배 법리다.

우리 민법은 제746조에 ‘불법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 한다’라고 규정한다. 민법 746조는 사법 기본이념이다.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의 보호영역 외에 두어 스스로 한 급부 복구를 어떠한 형식으로도 소구할 수 없다는 법 이상(理想)을 표현했다 할 것이고, 단지 부당이득 반환 청구만을 제한하는 조항은 아니다.”
민법 746조를 해석하는 대법원 판례 입장은 확고하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이날 최 회장이 노 관장을 상대로 제기한 이혼‧위자료‧재산분할 상고심을 열고, 재산분할 청구 부분에 관해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 원 금전 지원은 재산 분할에 있어 피고(노 관장)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특히 대법원은 원심이 노태우 전 대통령 금전 지원을 피고 기여로 참작한 일은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 원심 판결 가운데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에게 지원했다는 300억 원 출처를 대통령 재임 중 받은 뇌물로 보고, 이를 노 관장의 재산 기여 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위자료 액수 산정과 관련해서는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최 회장은 경영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반도체 산업 확장, 한미 관세협상 지원 등 당면한 현안과 그룹 경영에 한층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민법 제746조 취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이번 대법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구하지 않아도 불법성 절연 안 돼”
위자료 20억은 원심 판결 그대로
대법원은 이혼을 원인으로 한 재산분할 청구에서도 ‘불법원인급여’ 반환 청구를 배제한 민법 제746조 입법 취지는 고려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 부친 노태우가 1991년께 원고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 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태우가 뇌물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하여 함구함으로써 이에 관한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하여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고가 노태우가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 분할에서 피고의 기여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며 “결국 노태우의 행위가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 분할에서 피고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서는 안 된다”라고 결론 냈다.
이에 따라 최 회장과 노 관장은 2심 판단을 다시 받게 됐다.
최 회장이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8년 3개월 만이자, 지난해 5월 2심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 재산 분할로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大法, 20배 오른 위자료는 인정
소장에 붙인 인지 값만 44억 원
반면 대법원은 위자료 청구 부분에 대해 “원심 판단에 위자료 액수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재량의 한계를 일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봐 이 부분에 관한 원고(최 회장) 상고를 기각했다.
앞서 1심은 2022년 12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 원과 재산 분할로 현금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지난해 5월 양측 합계 재산을 약 4조 원으로 보고 이 중 35%에 해당하는 1조3808억 원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주라며 재산분할 액수를 대폭 상향했다. 위자료 또한 20억 원으로 크게 높였다.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회사 SK 지분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1심 결론이 뒤집히며 분할 액이 무려 21배(665억 원→1조3808억1700만 원)나 치솟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날 “원고가 부부 공동재산 형성‧유지와 관련하여 제3자에게 증여하는 등으로 처분한 재산은 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못 박아, 향후 재산분할 금액 조정 과정에서 원심 때보다 피고 측 기여 분 인정 범위가 축소되면서 감액될 전망이다.
소장에 붙인 인지 값만 44억 원에 달할 만큼, 상상을 뛰어넘는 거액 재산 분할 때문에 ‘세기의 이혼’으로 세간 이목이 집중되며 가려졌는데 이날 대법 판결에 주목할 부분이 있다.
대법원은 “혼인 관계가 파탄된 이후 부부 일방이 부부 공동생활이나 부부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 없이 적극재산을 처분했다면 해당 적극재산을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그대로 보유한 것으로 보아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할 수 있으나, 그 처분이 부부 공동생활이나 부부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
모든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올라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전합에 회부되지는 않았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 보고 사건’으로 처리해 대법관 전원이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진다.
박일경 기자 ek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