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일본 자민당 사상 첫 여성 총재로 선출되면서 일본 첫 여선 총리 자리를 사실상 예약했다. 적극적 재정 확대와 전통적 국가관을 중시하는 인물로, ‘철의 여인’이라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존경해 온 그는 강한 보수색 아래에서 당의 재건을 이끌 전망이다.
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되면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다카이치의 승리는 오랜 기간 여성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아 온 ‘유리천장’을 깬 사건으로 평가된다. 다만 그는 선택적 부부별성(姓)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등 젠더 평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입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다카이치는 신임 총재는 선출 직후 연설에서 “모두가 마차의 말처럼 일해 주길 바란다. 나 자신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을 버리겠다.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2021년 처음 총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아베 전 총리는 “여성 첫 총리, 멋지지 않나”라며 그를 공개적으로 밀었다. 그는 ‘아베노믹스’의 노선을 계승해 금융 완화와 기동적 재정 지출, 위기관리·성장 투자를 통해 물가상승률 2% 달성을 목표로 하는 ‘사나에노믹스’를 내세웠다.
2022년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후, 정치자금 규제법 위반 사건이 구아베파를 강타하자 무파벌이던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사실상 ‘아베의 후계자’로 보수층의 지지를 흡수했다. 2024년 총재선거에서 당원표는 최다를 얻었지만, 국회의원 표의 비중이 높았던 결선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에게 패했다.
지난 지난달 19일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 경제는 성장할 수 있다. 내가 성장시키겠다”라고 단언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경제안보 핵심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번 선출 결과에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참패로 인한 당내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민당은 다카이치 신임 총재를 전면에 내세워 참정당 등으로 이탈한 젊은 보수층 표심을 되찾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선거 기간 자신을 “온건 보수”로 규정하며 ‘극우 이미지’를 완화하려 했다. 특히 총리 취임 후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해 “마음의 평정 속에서 적절히 판단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참배를 계속하겠다던 지난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태도다.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어떻게 위령을 하고 어떻게 평화를 기원할지는 적시에 적절히 판단할 것”며 “절대로 외교 문제로 비화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제조업체에 다니던 아버지와 경찰관이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맞벌이 가정 출신이다. 비세습 자민당 총재로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이후 두 번째다.
현립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베대 경영학부에 진학했으며, 대학 시절에는 오토바이를 즐기고 헤비메탈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 블랙 사바스, 아이언 메이든, 딥 퍼플의 팬으로 지금도 남편과 다툰 뒤 전자 드럼을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다.
졸업 후에는 ‘마쓰시타 정치경제학교’에 입학해 정치인의 길을 걸었고,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첫 당선 됐다. 2006년 1차 아베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상으로 입각한 뒤, 제2차 아베 내각 이후 총무상, 자민당 정조회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책 공부에 매우 열정적인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자민당 내 대표적 지지자인 니시다 쇼지 참의원 의원은 “분야별 세부사항까지 전문가 이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