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이법’ 여론에도 21대 국회서 폐기
22대 국회엔 8개 법안 정무위 계류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결함 입증 책임 주체를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해야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국회에서 수년째 공전 중인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22대 국회에서 다시 나오면서 법 개정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강준현·민병덕·천준호·염태영·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 한국소비자안전협회 등과 공동주최로 정책세미나를 열고 제조물책입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결함 입증 책임 주체를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는 게 골자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총 8개의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 22대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한 사실’ 등을 증명하면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입증 책임 주체를 소비자로 하고 있는데, 소비자는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제조사로부터 설계도면 등을 받을 수 없어 현행 제조물책임법이 사실상 ‘제조사보호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강일 의원은 “기술 전문성을 가진 제조사와 달리 소비자가 제품 결함과 사고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가전제품 등 다른 공산품과 달리 자동차 분야의 피해 구제가 현저히 미흡하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이강일 의원실에 따르면 2010년부터 현재까지 7000건이 넘는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지만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조사가 배상 책임을 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특히 2022년 이도현군이 숨지는 사고로 ‘도현이법’으로 불리며 제조물책임법 개정 여론이 커졌으나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제조물책임법 상 소송에서 입증 책임 주체를 피해자(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는 규정을 둬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제조물책임 지침 제10조 4항에 따라 소비자가 기술적 또는 과학적 복잡성으로 인해 결함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과도하게 어려울 경우 결함을 추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병록 서원대 경찰행정학부 교수(한국소비자안전학회 회장)는 “현행 법률에서 요건으로 하고 있는 세 가지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삭제해 정보의 비대칭과 전문성 우열에서 피해자가 부당하게 불이익 당하고 있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가 증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자료제출(정보공개) 명령 제도를 법에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세준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간접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제조업자와 피해 소비자 사이의 정보격차를 줄이는 것이 전제돼야한다”면서 “증명 책임의 완화 규정과 동시에 자료제출 명령 제도를 신설함으로 써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증명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