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후진국형 산재…처벌만능주의 정부

입력 2025-08-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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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일자리연대집행위원장

중대재해 근절에 ‘일벌백계’ 예고
公기관부터 공사비·기간 보장하고
정부감독·기업예방 조치 병행해야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재명 정부는 연일 강도 높은 산업안전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돈 벌려고, 비용 아끼려고 목숨을 빼앗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자 사회적 타살”이라고 질타하면서 면허취소, 영업정지, 주가 폭락, 징벌적 손해배상, 입찰자격 박탈 등 강력한 해법들을 제시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재 근절에 “직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담긴 법안을 준비하겠다며 이에 호응했다. 일벌백계로서 중대재해를 근절해보겠다는 의도로 읽히지만 예방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개선없이 후진적인 처벌 방식에만 의존하려는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다.

산재사고는 왜 일어났고, 어떤 해법이 필요한지 밀도있는 조사와 분석은 외면한 채 기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후유증이 우려된다. 산업재해는 최저입찰가제, 다단계 하도급,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현장인력의 고령화, 외국인력의 소통능력 부족, 작업자 부주의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얽혀 일어난다. 이 때문에 개별사업장에 한정된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고 국가적 차원의 근본적 해결책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제대로 된 개선책 마련보다 처벌을 통한 해결만 강조한다. 후진국형 산재를 줄인다면서 내놓는 해법이 후진국형 처벌이어서 산재 감축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 걱정된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처벌보다 자율규제나 인센티브를 통한 예방시스템 구축을 강조한다. 처벌의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의 현장 관리감독, 안전교육의 내실화, 위험요소에 대한 선제적 자율점검, 안전설비 투자 확대, 현장 노동자의 안전교육 등의 예방조치는 산업재해 감축의 핵심이다. 정부는 인센티브 정책을 통해 예방 활동을 지원하고 기업은 노사가 함께 참여해 산업안전수칙 준수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안전선진국인 영국, 독일, 미국 등은 처벌보다 자율적인 예방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7년 사망사고 발생 시 살인죄를 적용하는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만들 정도로 산재에 엄격한 영국도 규제 중심의 정책이 산재예방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기업의 자율 책임관리 방식으로 전환한 상태다. 산재사고를 줄이는 데 처벌보다 자율규제를 통한 예방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은 선진국들의 경험에서 입증된 사례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처벌이 최고의 해법으로 통한다. 중대재해법 제1조 목적에는 아예 ‘처벌이 최고의 예방’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는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한다’고 못박고 있다. 현행법이 이렇게 돼 있으니 최고통치권자가 산재사고 발생에 분노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강경대책을 쏟아내는 것이 정상 수준을 넘어섰다고 비판만 할수도 없다.

문제는 처벌위주 대책이 실효성은 없고 부작용만 키울 뿐이란 점이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기업은 법적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서류 작업에 집중하고 이로 인해 현장 안전은 소홀하게 될 수밖에 없고 산재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엄벌주의는 비용은 많이 들지만 효과는 낮은 정책이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해 대통령의 질타를 받은 포스코이앤씨와 DL건설은 대표와 임원 등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 기업은 전국 모든 사업장 공사를 중단해 건설현장의 많은 일자리가 줄어들게 됐다. 군기잡기식 처벌에 따른 후유증이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산재 감축을 위해선 기업에 대한 관리감독과 근로자들의 산업안전수칙 준수도 강화돼야 하고 공공기관 발주 공사에 대한 적정한 공사비와 공기 보장도 필요하다. 지난해 사망 사고의 81%가 영세업체에서 발생했고 건설 사망사고 공공공사 95곳 중 77.9%(74곳)가 저가 공사였다. 이런 본질적이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원청 대기업만 닦달해서는 산재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시행된 이후에도 산재 사망자 수는 별로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처벌로는 현장의 안전 수준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전사고 근절을 위해선 제도개선과 함께 산업·건설 현장의 인력이나 공사 비용, 기간 등 구조적 문제는 어떤지, 기업의 안전 노력과 노동자의 안전수칙은 제대로 이뤄지는지 등을 살핀 다음 사후적으로 처벌을 병행할 때 실효성 있는 산재 감축을 이룰수 있을 것이다. 처벌만 강화한 엄벌주의로는 산재 근절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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