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못할 때

입력 2025-04-10 06: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사회경제부 전아현 기자 @cahyun
▲사회경제부 전아현 기자 @cahyun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보름쯤 됐을 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주심으로 정형식 재판관이 배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헌재의 공정성 논박이 불이 붙은 건 아마 그때부터였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 재판관은 당시 6인 체제였던 헌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지명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주심을 맡았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안도감을, 또 다른 이에게는 불안감을 심어줬다. 결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난무했다.

당시 한 로스쿨 교수는 기자에게 “정 재판관은 평생 판사만 한 사람”이라며 “판사는 정치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 법적 요건이 탄핵을 가리키는데 어떻게 판단을 달리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 후로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문형배·정계선 재판관을 향해서도 정치 편향 논란이 이어졌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미뤘다. 탄핵 선고 전날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제는 결과를 진짜 모르겠다”고 했다.

헌재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들이 짙은 안개가 돼 탄핵심판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

4일 헌재는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윤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비상계엄 선포 요건, 계엄 포고령, 국회로의 군경 투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등 모든 쟁점이 ‘올 빙고’ 위헌·위법이었다. ‘윤의 사람’으로 불리던 정 재판관은 주심으로서 파면 결정문 초안을 썼다.

계엄부터 파면까지 123일이 걸렸다. 지난해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의 실체는 이미 명료하게 드러났다. 대통령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냐 아니냐, 즉 중대성이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했을 때, 계엄군이 기어코 국회 유리창을 깼을 때, 포고령 속 언론 통제 문구를 확인했을 때, 메시지가 지지자들만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그러면 안 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직위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사람이 변해간다는 말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다. 법관으로서 올곧은 판단을 내렸다.

윤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는가, 다시금 생각해 본다. 법과 원칙을 따른다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임기를 3년도 채우지 못하고 파면됐다.

헌재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해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질책했다.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주권자인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는 것이다. 자리가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연말에 ‘바이오 상장 러시’…흥행 불붙었다
  • 쿠팡 청문회, 17일 확정…김범석 의장 출석 여부 ‘최대 쟁점’[이커머스 보안 쇼크]
  • [AI 코인패밀리 만평] 문제가 문제
  • 새내기주 평균 130%↑…바이오·AI·반도체·K-뷰티가 이끈 '섹터 장세'
  • 단순 배탈과 차원이 다르다…‘노로바이러스’ 어떻게 피하나 [e건강~쏙]
  • ‘피부 미인’ 만드는 K재생 흡수기술⋯세계 여심 흔든다[차세대 K뷰티 슬로우에이징]
  • 물려주고 눌러앉고…서울 주택시장 '매물 잠김' 심화
  • 오늘의 상승종목

  • 12.09 11:56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4,169,000
    • -1.55%
    • 이더리움
    • 4,621,000
    • -0.5%
    • 비트코인 캐시
    • 857,000
    • -4.94%
    • 리플
    • 3,072
    • -0.81%
    • 솔라나
    • 197,900
    • -1.1%
    • 에이다
    • 640
    • +0.95%
    • 트론
    • 418
    • -2.79%
    • 스텔라루멘
    • 357
    • -0.83%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000
    • -0.5%
    • 체인링크
    • 20,290
    • -2.5%
    • 샌드박스
    • 208
    • -0.9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