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오래된 상처

입력 2024-07-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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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막 찔렀어. 나가라고, 당장 나가라고 소리도 질렀어. 아들 못 낳는 며느리 필요 없다고. 아들 못 나아서 날 내쫓았겠어? 내가 싫었던 거지. 곰보라고 대놓고 흉봤어. 시어미가 날 그렇게 못살게 구는데 신랑이란 작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멀뚱멀뚱 천장만 보고 있었어.

짐도 못 챙기고 신도 못 신고 뛰쳐나왔어. 그 길로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내린 곳이 경기도 이천이야. 내 꼬락서니가 불쌍했던지 어느 밥집에서 잠자리를 마련해 줬어. 식당 일을 도우며 가게 쪽방에서 한 달인가 보냈어.

그때는 오일장이라고 있었는데 그릇 파는 보부상이 장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릇을 팔았어. 우리 마을에도 자주 왔었던 보부상이 이천에 왔다가 날 본 거야.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이 이천 식당에 날 찾아왔어. 집에 가자고.”

70대 할머니는 소녀같이 울었다. 연신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50년 전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기는 그래서 우울하다고,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설움에 복받친다고,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이었을까, 사랑받을 수 없는 인생인가 서럽다고 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지우지 못한 상처가 있다. 지우려 애써도 생채기만 더해지는 상처가 있다. 그렇다고, 상처가 있다고 해서 무가치하거나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낄 필요는 없는데 그게 쉽지 않다.

상처는 상처일 뿐이라고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면 자신은 무가치하다고,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모질게 군 세월만큼 나는 가치 있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안아주며 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마다 같지가 않아서 스스로 안아주기가 잘 안 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겐 누군가의 안아줌이 필요하다. 나의 진료가 누군가의 안아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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