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 누출사고’ 피해 입증 어디까지 하면 될까

입력 2024-01-2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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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환경오염 피해, ‘개연성’만 입증하면 배상책임”

피해구제법상 인과관계 추정법리 첫 선언
기존 선례 비해 피해자 측 증명 부담 완화

1인당 위자료 700만원 확정…1심 500만원보다 상향

불산 누출, 해양 기름 유출 등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 입증을 어디까지 하면 되는지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따른 기업 등의 배상 책임을 가릴 경우 유해 물질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개연성만 증명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환경오염피해구제법상 배상책임 사건에서 기존 선례보다 피해자의 인과관계 입증 부담을 완화했는데, 상당한 개연성을 증명하면 인과관계가 추정된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선언한 판결이다.

▲ 한 사업장에서 불산이 누출된 사고가 발생한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에 언급된 사업장과는 관계 없음. (이투데이 DB)
▲ 한 사업장에서 불산이 누출된 사고가 발생한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에 언급된 사업장과는 관계 없음. (이투데이 DB)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황모 씨 등 19명이 반도체용 화학제품 제조업체 램테크놀러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황 씨 등은 램테크놀러지가 운영하는 충남 금산 공장에서 2016년 6월 4일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로 두통과 호흡기 질환 등을 앓았다며 2017년 2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환경오염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 사건에서 종전 판례 태도는 유해 물질이 배출돼 피해자에게 도달했고, 실제 피해가 발생했음이 각각 증명돼야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2016년 1월 시행된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시설이 환경오염 피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시설로 인해 환경오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1심 법원은 주민들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회사가 1인당 위자료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 법원은 위자료 액수를 700만 원으로 늘렸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시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시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공장에서 누출된 불산은 기체 상태로 공기 중으로 확산했다가 지표면으로 낙하해 원고 등에게 피해를 줬다고 볼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달리 이 사건 사고와 원고 등에게 발생한 피해 사이 인과관계를 부정할 사정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특히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 시설 사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경우 피해자가 여러 간접사실을 통해 시설의 설치‧운영과 관련해 배출된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그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아울러 피해를 뒷받침할 간접사실로는 시설의 가동과정과 설비, 투입‧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기상 조건, 피해 일시‧장소 등을 꼽았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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