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상담소] 잘 지내서 문제였다

입력 2023-09-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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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부인이 가족상담을 받으러 왔다. 노부인은 너무 우울하다고 토로한다. 만약에 개인상담 환경이었다면, 본격적으로 개인 과거를 탐색하면서 정신분석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다. 혹은 행동만으로 문제 초점을 좁혀서 새로운 생활 습관을 습득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 관계를 다루는 가족치료자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다.

가족치료자는 노부인이 느끼는 우울감에서 출발했지만 이내 가족 관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노부인은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그녀가 평생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반면에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외모가 수려하고 다정했지만, 돈을 못 벌었다. 해서, 노부인은 오랫동안 남편을 구박했다.

요즘이야 사람들이 성 역할을 고정하지 않지만, 두 사람이 살아온 시절은 달랐다.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노부인은 남편(가장) 역할을, 남편은 아내(가사노동) 역할을 수행한 셈. 남편은 자주 우울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연하다. 가장으로서 돈을 벌지 못하면서 대신 집안일을 살뜰하게 돌보았지만, 아내에게 자주 무시를 당했을 테니까.

흥미로운 전개다. 현재 노부인이 느끼고 있는 우울감을 예전에는 남편이 느꼈으니까. 그때는 아내는 썩 괜찮았고, 지금은 남편이 괜찮으니까. 현재 상황을 물어보자, 얼마 전부터 남편이 우연히 간단한 아르바이트(식당 서빙)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적성에 맞아서 계약직으로 취업까지 성공했단다. 외모가 수려하고 다정하니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계 역학을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한마디로, 노부인이 우울하게 된 이유는 개인적·생물학적 이유가 아니다. 관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즉, 남편이 경제적인 능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부인은 늘 남편이 무능력하다고 구박했지만, 사실은 남편이 무능력해서 좋았다. 잘생기고 다정한 남편이 집안에 묶여서 살뜰하게 살림하니 좋을 수밖에.

노부인 우울감 문제는, 남편에게 덜 의존하게 되면서 풀렸다. 겉으로는 남편이 부인에게 (경제적으로)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부인이 (정서적으로) 남편에게 과도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가족 관계는 모빌과 같다. 앞으로든 뒤로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남을 탓하기보다는 관계 역할을 제대로 이해해야 풀린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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