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시선] 국민은 ‘수신료의 가치’를 묻는다

입력 2023-07-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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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매체시대 KBS 통합징수에 저항

상업화로 공익성 취지도 못 살려

공영방송 존재 이유 되돌아 봐야

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찬성하는 쪽에는 국민들의 선택권을 주장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방송장악 혹은 공영방송 몰살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청료 제도는 1973년 문화공보부의 한 부서였던 KBS가 한국방송공사로 전환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수신료와 관련된 법 규정은 아주 허술했다. 처음에는 TV 수상기를 구매할 때 징수하는 형태였다. 지금도 수상기 대수를 기준으로 징수하는 것을 두고 다세대 주택이나 숙박업소 등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허술한 제도였지만 수신료에 대한 국민 반발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공권력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징수 주체가 KBS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81년 제5공화국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월 2500원 KBS 수신료를 책정했다. 알려지기로는 당시 일간신문 월 구독료를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현재 신문구독료가 2만 원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KBS 보도가 공정했다고 할 수도 없다.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으로 정권이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던 시절이다. ‘땡전 뉴스’로 대변되는 엄격한 보도 통제가 시행되기도 했다. 1985년 총선 중에 있었던 극심한 편파보도는 수신료 거부 운동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신료에 대한 저항이 크지 않았던 이유는 방송사가 KBS, MBC 두 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들에게 KBS는 없어서는 안 될 일종의 필수재였던 것이다.

물론 법적 강제력이 없어 징수율은 50%를 약간 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는 낮은 징수율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두 개뿐인 지상파방송이 경제성장과 함께 급증한 광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블TV나 위성방송 같은 다채널방송은 아직 출범하기 전이었고, 인터넷 포털이나 유튜브, 모바일 폰은 상상조차 못 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구조에서 엄청난 흑자가 이어지면서 KBS에 수신료는 일종의 보조금이나 ‘가외 수입’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91년 상업방송인 SBS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SBS는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아 출자 자본을 상회하는 이익을 내면서 방송광고 시장을 침식해나갔다. 독점 구조가 약화되고 강력한 대체재가 등장하면서 필수재 같았던 KBS 위상이 급속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결국 KBS도 본격적으로 시청률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KBS 2TV가 상업방송보다 더 낮은 공익성 평가를 받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 같은 상업화 전략은 정치적·경제적으로 독립해 시장에서 위축될 수 있는 공익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공영방송 취지와 완전히 상반된다. 필수재는 고사하고 공영방송으로서 차별성도 약화된 것이다. 결국 KBS는 안정적인 수신료 징수 방안을 모색하게 됐고, 그 대안이 1994년 전기요금에 TV 수신료를 병과하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수신료 통합 징수 이후에도 국민들로부터 큰 불만이나 저항이 없었다는 것이다. 2500원이라는 적은 액수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국민이 공영방송의 존재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나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일종의 ‘사회적 공리’ 의식이 존재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수신 장비나 전파사용료 같은 물리적 근거보다 공익적 필요성이나 보편적 서비스 같은 사회적 논리에 기반해 수신료 제도를 운영해 왔다. 공영방송 메카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BBC조차 최근 수신료 존폐 위기에 봉착해 있는 원인이 바로 공영방송 존립 근거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대통령실 온라인 조사뿐 아니라 많은 조사 결과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징수 방법에 대한 의견조사지만, 그 내면에는 공영방송 KBS에 더 이상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KBS 수신료는 잘하든 잘못하든 무조건 지급하는, 또 어떻게 쓰는지조차 알 수 없는 ‘편안한 안락의자’가 아니다. 이제 냉정하게 수신료의 가치를 따져보아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그것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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