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30 잔혹사

입력 2022-02-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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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2030 밥그릇을 걷어찼습니다."

'공무원 특혜'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세무사 2차 시험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수험생들이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문제를 제기한 수험생들의 준비 기간은 평균 5년. 시험 특성상 수험생은 2030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 중 82%가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과락한 사이 2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한 기성세대는 규정상 과목 면제를 받아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응시자가 5000명이 채 안 되는 시험에서 발생한 논란이지만 공감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뜩이나 사회에서 자리 잡기 힘든 2030세대가 공정해야 할 시험에서도 기득권에 자리를 뺏겼다는 분노가 들끓었다.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는 공무원이 '면제'라는 무기로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가 동조했다.

'2030 잔혹사'가 시작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기자가 대학교에 다니던 2010년대 중반 '헬조선'이 사회 화두였다. 영어단어 '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까운 사회'라는 의미다. 집값은 비싼데 취업마저 쉽지 않다 보니 2030 청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헬조선'을 외쳤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헬조선이 아닌 "헬 그 자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아파트 가격은 박근혜 정부(5억209만 원)보다 2배 이상 올랐고 사회 진출 문턱은 여전히 높아서다.

기성세대 태도도 2030을 또다시 좌절하게 하는 요인이다. 어려움을 토로하면 "20, 30대가 벌써 집 걱정을 하느냐"부터 "좋은 회사만 들어가려고 한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우석훈 내가꿈꾸는나라 대표가 '88만 원 세대'를 출간한 2007년과 다름없는 인식이다. 세무사 시험을 책임지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라는 어른은 각종 의혹에 "불합격한 수험생들 사이에서 늘 있는 일" 정도로 치부했다.

청년들은 길고 긴 '2030 잔혹사'를 끝낼 해법을 정치에서 찾고 있다. 자신과 철학이 같은 정당에 가입해 '당원 인증'을 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다른 진영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대신 자료에 기반을 둔 토론도 벌어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18세∼29세는 66.4%, 30대는 84.1%로 나타났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세대의 반전이다.

어른들은 묘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3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들도 청년층 표심을 얻기 위해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은 드물다. '어떻게'에 해당하는 방법론이 빠진 데다 퍼주기식 공약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2030이 여전히 누굴 뽑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다.

미국 제6대 대통령을 지낸 존 퀸시 애덤스는 "항상 원칙에 따라 투표하라"고 말했다. 이념이 아닌 자신만의 원칙에 따라 표를 던질 세대가 2030이다.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공정한 경쟁, 정치적 올바름, 좋은 일자리와 환경이다. 청년이 자립할 수 있는 자원 재분배 틀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돈 몇백만 원과 청년기본주택으로는 이 잔혹사를 끝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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