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뭐라고 울까요

입력 2021-12-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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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학적인 눈물/ 이재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안개는 다시 태어난다는 약속도 없이 천천히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다. 안개를 온몸으로 먹고 슬픔은 기지개를 켠다. 서럽게 아름다운 문장이다. <'누대(屢代)' 부분>

같은 시의 '슬픔을 고이 접어'둔다는 표현처럼 저자는 슬픔을 아낀다. 저자에게 슬픔은 흘러가는 감정이 아니라 마주해야 하는 물질이다. 슬픔을 물질화한다는 것은 그것을 문제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물질로서의 슬픔은 쉽게 해소되거나 매만져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도 있"('저에게 두 번째 이름을 주세요')다고. 같은 시에서 시인은 슬픔을 충전시키는 안개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흔하고 아름다운 물질"이라고도 말한다. 이에 비추어보면 슬픔은 어떤 아름다움과 인접한 종류의 물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것. 슬픔에 대한 이와 같은 시인의 이해는 삶에 대한 그의 이해이기도 할 것이다.

문학동네시인선 166번으로 이재훈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을 펴낸다. 1998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벌레 신화' 등 시집을 통해 원시적 감각에서 신화적 상상으로 나아가는 시적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간의 작업들에서 비극적인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환상적 언어로 고통을 끌어안는 방법을 택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슬픔을 물질처럼 붙잡고 그것을 오래 들여다본다. '생물학적'이라는 표현처럼, 그가 들여다보는 순도 높은 슬픔은 일상적 언어를 통해 지극히 육체적인 것으로 환원되어 자신의 일부가 된다.

책에 수록된 62편의 시는 우리의 삶이 환희로만 가득찬 시간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을 동반한 시간이라는 자각, 그리고 그 고통과 괴로움은 결코 우리를 좌절시키거나 포기시키려 찾아오는 고비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삶을 열어젖히는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해야만 하는 생의 빛일 수 있다는 힘겨운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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