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15. 중국의 ‘유럽 갈라치기’ 쉽지 않네

입력 2021-12-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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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 탄압에 투자 약속 어기자 동력 상실, ‘17+1 경제협력체’ 삐걱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대표부 개설은 ‘하나의 중국’ 이외에 하나의 타이완이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 또 중국의 국내 문제에 심각하게 간섭하는 행위이다.”

발트 3국의 하나인 리투아니아는 지난달 18일 타이완의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개설했다. 마찬가지로 타이완도 상대국의 수도 빌뉴스에 대표부를 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중국 외교부는 글의 첫머리에 인용된 것처럼 강력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리투아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공사)급으로 격하했다.

리투아니아와 외교관계 격하 ‘보복’

중국과 외교 관계를 체결한 국가들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수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상당수 나라들이 타이완에 무역과 영사 업무 일부를 맡는 대표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그런데 대표사무소를 개설했다고 외교 관계의 급을 내리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그만큼 중국이 소국 리투아니아에 본때를 보여주면서 유사한 정책을 실행하려는 국가들에 경고탄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발트 3국은 이런 중국의 강경정책에 연대하는 모습이다.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해 3국 국회의원 대표단은 지난달 28일 타이완을 방문했다. 중국이 리투아니아를 보복한 직후 이들은 타이완을 방문해 경제와 민주주의 촉진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논의했다.

중국은 2012년부터 중동부 유럽 및 발칸반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 왔다. 유럽연합(EU)의 약한 고리로 여겨지는 이 지역을 공략해 EU를 갈라치기 하려 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분리지배 정책은 쉽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타이완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蔡英文·가운데) 총통이 발트3국 의원 방문단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행사를 주도한 리투아니아는 앞서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개설해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격하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사진제공 타이완 총통부
▲지난달 29일 타이완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蔡英文·가운데) 총통이 발트3국 의원 방문단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행사를 주도한 리투아니아는 앞서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개설해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격하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사진제공 타이완 총통부

“트로이의 목마” EU도 ‘17+1’ 협력체 견제

중국은 2012년 4월 중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16+1’ 협력체를 발족했다. 중동부 유럽 등 EU 회원국 가운데 11개국과 발칸반도의 5개 나라가 이 협력체에 포함됐다. 발트 3국과 비세그라드 4개국(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는 EU 회원국이다. 비EU 회원국은 발칸반도에 있는 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다. 그리스가 2019년 4월 협력체에 가입하면서 17+1이 됐다. 협의체는 중국과 이들 간의 투자와 무역 촉진, 문화 교류 등이 목표이다.

중국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일대일로 사업을 펼쳐왔고 아시아·중동·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의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투자를 약속했다. 여기에서 유럽이 빠질 리가 없었다. 육상 비단길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러시아를 거쳐 이탈리아의 베니스가 종점이다. 중국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투자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주요 2개국(G2)의 하나로 국제무대에서 평화적 역할을 강조하고자 했다.

초창기 이들의 협력은 아주 잘되는 듯했다. EU의 행정부 역할을 수행하는 집행위원회에서 회원국 확대를 담당하는 요하네스 한(Johannes Hahn) 집행위원은 이 협력체에 참여한 중동부 유럽 EU 회원국들을 ‘트로이 목마’라고 비판했다. 중국이 이들에게 대규모 경제협력을 제공해 EU의 대중국 정책 공조를 저지할 것으로 우려했기에.

그러나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의 대홍콩 강경정책과 약속한 경제지원이 이뤄지지 않자 이들 협력체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 떠올리게 해

순조롭게 보였던 이 협력체가 어긋나게 된 것은 먼저 중국의 홍콩 민주화 탄압에서 시작됐다. 2019년 3월 홍콩 정부가 범죄인의 중국 본토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제시하자 수십만 명이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홍콩 당국은 이 법안을 철회했지만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이곳 범죄인의 본토 인도가 가능해졌다. 이 법은 6월 말 발효됐다. 이에 반대하던 수백여 명의 홍콩인들이 체포됐고 비판적인 언론인들도 투옥됐다.

중국이 타깃으로 삼았던 발트 3국과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를 공유한다. 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90년대 초 냉전 붕괴까지 소련의 압제에서 신음하던 이들은 중국의 홍콩 탄압을 보면서 과거의 악몽을 떠올렸다. 경제협력체 일부 회원국들은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강경 수사를 구사하던 중국의 의도를 점차 명확하게 깨닫게 됐다.

약속 위반에 배신감, 反中으로 돌변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대EU 직접투자도 크게 줄어들었다. 2016년 442억 유로(영국을 포함한 금액)를 투자했던 중국은 2019년에는 117억 유로, 2020년에는 불과 65억 유로를 투자했다. 지난해에는 팬데믹의 영향이 컸지만, 그래프에서 보듯이 2016년을 정점으로 중국은 EU 회원국에 대한 투자를 크게 줄였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중국은 미국과 무역분쟁을 벌여왔다. 중국은 통상분쟁 때문에 외자 유출을 통제했다. 중국 투자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 프랑스와 독일 등이 주도해 EU 차원에서 외국인 투자를 심사해 국가안보 등의 이유로 투자를 불허하는 법안도 이때 통과됐다. 2013년 중국의 대EU 전체 투자의 5% 남짓을 차지했던 중동부 유럽 국기들의 경우 이 비중이 2019년에는 3% 이하로 떨어졌다. 당연히 이들은 중국에 배신감을 느꼈다. 가장 친중국적인 행보를 보였던 체코의 밀로스 제만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초 중국이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판에 앞장섰다. 친중국 인사가 반중 인사로 변모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상반기 예정됐던 17+1 정상회의는 무기한 연기됐다. 당시 중국 언론은 코로나19 창궐을 이유로 들었지만 화상회의조차 열리지 않은 것은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들어 리투아니아는 다시 대중국 포문을 열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5월 말 17+1 협력체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리투아니아는 “17+1 협력체가 EU를 분열시킨다”면서 다른 회원국들도 탈퇴할 것을 촉구했다. 리투아니아는 또 이 협력체가 기대했던 이익을 창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왜 리투아니아를 표적으로 삼았는지 명확해진다.

EU ‘글로벌게이트’와 경쟁 불가피

EU는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 투자 심사제도를 도입했다. 비EU 회원국의 법인이나 개인이 회원국의 에너지와 교통, 우주산업, 국방과 같은 핵심 인프라 시설이나 에너지, 원자재 등의 공급망에 투자할 경우 회원국은 이를 사전에 심사할 의무를 지닌다. 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들은 관련 회원국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EU 차원의 법적 구속력이 있는 규정으로 제정하려 했으나 법 제정이 논의된 2017년의 경우 중동부 유럽 회원국들이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법적 효력이 크게 약화됐었다.

EU는 2일 2027년까지 개도국의 인프라에 3000억 유로(약 400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투자액과 민간 기업의 예상 투자를 합친 금액으로 전액 투자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EU의 ‘글로벌 게이트웨이’ 전략은 중국을 겨냥했다. 중국의 대EU 분리지배 정책이 사실상 실패하면서 경제대국 EU가 개도국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대중국 강경정책을 표방한 신호등연정(사민당과 녹색당, 자유민주당)이 독일에서 출범했고 EU 차원에서도 이 정책을 관철시키려 할 듯하다. 따라서 중국의 EU 분리지배는 더욱더 쉽지 않을 것이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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