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21-12-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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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원장

최근 들어 유엔 산하 국제기구와 유럽연합 등에서 ‘임무지향적 혁신(mission- oriented innovation)’ 개념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임무지향적 혁신이란 정부가 ‘인류의 달 착륙’, ‘핵기술 개발’과 같이 특정 임무를 설정하하고, 이를 완수하기 위한 방향으로 민관의 자원을 동원하여 기술혁신을 이뤄내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임무지향적 혁신이 부각되는 이유는 세계가 기후위기, 불평등, 고령화, 청년실업 등 많은 사회적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민간이 투자를 꺼리는 고위험 영역에 정부가 초기 자본집약적 투자를 수행하고 민간의 혁신을 이끄는 기업가적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임무지향적 혁신은 공공 부문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재고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까지 공공 부문의 경제적 역할은 시장실패이론을 통해서 정당화되었다.즉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시장실패’가 발생한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하여 시장을 교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실패이론은 공공 인프라(도로, 다리 등)의 구축과 운영, 외부비용(환경오염 등)과 편익(집단면역의 형성 등)의 내부화, 자연 독점(전력,철도 등)의 국유화 등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시장실패이론은 1970년대부터 득세한 신자유주의 이론에 의해 정부 역할을 지극히 소극적인 데 한정하는 논리로 왜소화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실패’와 ‘구축효과(crowding out)’라는 두 가지 개념을 도입하여 정부의 역할을 크게 위축시켰다. ‘정부실패’는 관료의 행동이 사적 이해관계(정실주의, 부패, 지대 추구 등)에 포획되는 것을 지칭하는데, 이 개념에 따르면 ‘시장실패’가 발생하더라도 ‘정부실패’의 비용이 더 클 경우에는 정부 개입은 정당하지 못하다. 여기에 정부투자는 민간투자를 대체할 뿐이라는 ‘구축효과’의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정부의 역할은 더욱 위축되었다.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임무지향적 혁신은 이러한 시장실패이론의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적하면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첫째, 시장실패이론은 새로운 시장의 창조와 형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시장실패는 이미 존재하는 시장을 전제로 하며, 시장의 효율성을 방해하는 요인을 교정하는 이론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 더욱이 ‘달 착륙’과 ‘컴퓨터 개발’ 계획과 같이 임무지향적 공공투자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과 영역을 창조하여 새로운 기술경제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시장실패 교정의 결과가 반드시 사회적으로 최적일 수 없다. 시장실패이론은 시장실패의 요인을 제거하면 시장 선택의 결과가 경제를 성장과 발전의 올바른 경로로 인도할 것으로 전제하지만, 다양한 경제주체의 개별적 선택의 결과인 시장 판단은 맹목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회적으로 최적인 상황을 보장하지 않는다. 셋째, 경험적으로 볼 때 정부는 주로 민간이 선택하지 않는 투자를 수행해 왔기 때문에 정부투자가 민간투자를 대체하는 데 그치는 구축효과가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정부는 성공 확률이 낮은 기술개발 프로젝트와 같이 민간이 위험도나 수익률 등의 이유로 투자를 꺼리는 분야를 주로 투자 대상으로 해 왔다.

새로운 기술-경제적 패러다임은 사회적 도전과제의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앞서 살핀 요인들 때문에 시장에 의해서 자생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논의는 시장실패를 넘어서 정부 개입의 새로운 정당화 논리를 개발하고, 기후위기 등과 같은 사회적 도전과제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경제적 패러다임을 확립하기 위해서 공공 부문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면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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