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광복절에 만나는 경제인들의 독립운동

입력 2021-08-09 05:00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 에스케이 사장

광복의 계절이 왔다. 독립기념관은 8월의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의 이길용 체육기자를 선정했다. 이 기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주인공이다.

알리고 싶지 않은 진실을 문제 삼아 동아일보를 폐간까지 시킨 일제에 맞서 동화약품(당시 동화약방)은 광고로 민족의 쾌거를 방방곡곡에 알렸다. 동화약품은 당시 활명수 광고에 ‘반도(조선)남아 손기정의 우승을 축하’하는 문구를 집어 넣었다. 서슬 퍼런 일제의 정보 통제를 피하며 진실을 전달하는 지혜로운 방법이었다.

동화약품의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연락망인 ‘서울 연통부’를 운영했었다. 동화약품이 만들던 활명수는 한 병 값이 당시의 막걸리 한 말 상당,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지참했다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군자금을 마련했다. 결국 민강 선생은 옥살이를 했고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후에 동화약품을 인수한 보당 윤창식 선생은 ‘조선 산직장려계’라는 비밀 독립운동단체의 총무로 활약했다. 7대 사장이었던 윤광열 선생은 보성전문 재학 중 징집됐다 광복군 중대장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활명수로 민중의 생명을 구한 동화약품은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한 경제인을 배출한 민족의 기업이기도 했다.

전경련의 설립에 관여했던 해사 이원순 선생은 1914년 하와이로 망명해 반은 경제인으로 반은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그는 가구판매업을 해 번 재산을 대조선독립단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독립운동의 군자금으로 썼다. 1947년에는 여권도 없이 스톡홀름에 가 한국올림픽위원회(KOC)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을 성사시켰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이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쾌거였다. 귀국 후 한국해광개발 등을 설립해 경제활동을 한 독립운동가를 전경련은 타계할 때까지 고문으로 예우해 재계의 원로로 극진히 모셨다.

비슷한 시기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11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소년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 식품회사를 세워 상당한 재력을 쌓고 1926년 귀국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이 창업의 바탕이라, 그의 기업관은 조국독립 그 자체였다.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등이 그의 독립운동 동지들이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은 학창시절 6·10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투옥됐다. 당시 중앙고보 3학년 급장이었던 조홍제는 시위 주동자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었고, 이후 동맹휴학을 주도했다 끝내 퇴학당하고 말았다. 두산그룹의 창업주 매헌 박승직 선생은 1907년 거족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해 거액을 기부했다. 이때의 기부로 두산은 2001년 국채보상운동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서상돈 상을 받기도 했다.

LG그룹의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1942년 독립군 양성을 위한 자금으로 쓰라고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쌀 500가마니 값에 상당하는 1만 원을 희사했다. 당시 일제로부터 지명수배를 받고 있던 이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대준다는 것은 사업은 물론 집안까지 거덜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는 태연히 했다. 상해임정 비밀자금의 통로로, 안희제 선생이 세운 백산상회의 설립주주 중 한 분이 GS그룹의 공동창업자 허만정 회장이었다. 지금 LG와 GS는 경영상으로는 분가됐지만 항일애국의 뿌리는 태생부터 공유한 셈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한창일 때 전경련은 삼성이 상해임정청사를 복원한 만큼 중경임시정부 청사는 LG그룹이 주도적으로 복원하도록 했다. 아울러 헤이그에 있는 이준 열사의 순국현장을 찾아내 복원하기도 했다. 또 독립군 출신의 광복회원이 그들의 전투 현장이었던 청산리 대첩과 하얼빈 안중근 의사 저격현장을 직접 답사하도록 지원해 정확한 위치에 기념표지를 세우도록 했다. 한때는 3·1민족운동 대표 33인의 생가를 30대 그룹에서 모두 복원해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기업의 활동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경제인들에게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국적이 따라붙는다. 나라 잃은 서러움을 일찍이 절감했던 한국의 경제인들은 어느 나라 누구보다도 애국의 신념으로 독립을 꿈꿨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경제인들의 독립운동을 찾아내 국민들과 공유하는 것은 한국 재계의 뿌리를 찾는 또 다른 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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